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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인문학

김재찬은 영조 22년(1746)에 태어나 순조 27년(1827)에 사망한 인물로 정부의 재정을 맡아 나라살림을 꾸리는 데에 능력이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김재찬의 아버지 김익 역시 영의정을 역임할 정도로 유서 깊은 집안 출신으로 정조 4년(1780)에 규장각직각(奎章閣直閣, 정3품∼종6품)에 임명되었고, 이어 초계문신(抄啓文臣)에 뽑힐 정도로 정조에게 인정을 받았다
[자료 제공 국민권익위원회]

백성의 실질적 생활개선을 추구하다

초계문신제도는 재능 있고 젊은 인물들을 의정부에서 선발해 교육과 연구를 시키며 경전의 참뜻을 익히고 40세가 되면 졸업시켜 익힌 것을 국정에 적용하게 하는 것으로 정약용, 홍석주 같은 유명 학자들이 초계문신 출신이다. 김재찬 역시 초계문신 출신으로 정조의 뜻을 이어 공론을 앞세우기보다는 백성의 생활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키는 정치와 학문을 추구하였다. 1786년에 원춘도(강원도) 관찰사에 임명되었을 때에는 울릉도에 잠입하여 고기와 향나무를 채취하는 것을 금지시켰고, 봄·가을로 나눈 영동지방 무사 시험일을 한날로 할 것을 건의하여 시행하도록 하였다. 1807년 우의정에 임명되었을 때에 당시 공정함을 잃었던 과거의 폐단을 지적, 시정을 요구하였다. 또한 1809년 영의정이 되어 영남지방의 대동미 3분의 1과 호남지방의 대동미 4분의 1의 납부기한을 뒤로 미루도록 조처하였다.

임금의 선물일지라도 예와 절차에 따라야

김재찬과 아버지 김익의 대쪽 같은 성품을 볼 수 있는 일화가 있다. 김익이 병이 들어 위중하던 어느 날 정조가 밤중에 신하들을 불러 경서와 왕도에 대해 강론하는 강연을 열었다. 김재찬 역시 궁으로 들어가서 참석했는데, 정조가 영의정을 지냈던 김익을 걱정하며 병세를 물었다. 노병으로 항상 기운이 없다는 김재찬의 대답을 듣고 정조가 그 자리에서 산삼 세 근을 내렸는데, 김재찬이 크게 감격하였고 집으로 돌아와 정조에게 받은 산삼을 아버지께 바쳤다. 하지만 김익은 기뻐하기는커녕 도리어 화가 난 기색을 보였다. "임금께서 이것을 어떻게 주셨느냐?" "경연자리에서 아버님의 병환을 걱정하시며 제게 내리셨습니다." "쯧쯧. 너 같은 무리가 신하라고 있으니 나라의 일을 알 만하구나. 한 나라의 임금이 대신(大臣)을 공경하고 예로 대우하는 것은 결코 사사로운 감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만일 임금이 삼을 하사하시려면 마땅히 정해진 절차를 따르도록 하는 것이 역대 임금들이 대신을 대접하는 예이거늘, 어찌 밤중에 그 아들을 불러서 준단 말이냐. 그리고 너는 어찌해서 그것을 예로 간하지 않고 순종했단 말이냐. 어서 썩 도로 임금께 갖다 드리거라." 김재찬 역시 아버지의 꾸짖음을 듣고 깨달아 정조에게 다시 삼을 갖다 올리며 김익의 말을 고하고 예와 절차를 생각지 못한 자신을 꾸짖어 달라 말했다. 정조 역시 자신의 과실을 깨닫고 다시 명하여 절차에 따라 김익에게 삼을 내렸다. 만약 김익이 정조의 마음을 감사히 여겨 산삼을 받았다면 그것이 후에 관례가 되어 임금이 나라의 재산을 함부로 사용하게 될 것을 염려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늙고 병든 대신을 걱정하는 정조의 마음과 자신을 생각해 준 임금의 마음을 알면서도 예와 절차에 어긋난 것임을 알고 거절한 대신의 마음은 오늘날에도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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