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JANUARY/ vol. 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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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과의 저녁 식사나 직장에서의 회식 등 사회생활을 하면서 수시로 생겨나는 각종 술자리.
모임이 끝난 후 집에 갈 때 제일 먼저 찾게 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대리운전기사입니다.
하지만 술 취한 고객의 차량을 대신 운행하는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죠.
고객의 음주운전을 방지하고 안심 귀가를 돕는다는 책임감으로
매일 운전석에 앉는 이창배 국장을 만나 대리운전기사의 ‘삶’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정라희 / 사진박찬혁

운전대를 대신 잡은 손에서 시작되는 안전

이창배 국장의 하루는 아침이 아닌 밤부터 시작합니다. 보통은 저녁 8시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집중해서 일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일과시간이 달라졌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각종 모임과 외식이 어려워지면서 대리운전기사를 찾는 ‘콜’ 역시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요즘은 한 콜이라도 더 잡기 위해 저녁 6시면 출근길로 나섭니다. 대리운전을 시작 한지 햇수로 10년째.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이지만 이렇게 얼어붙은 경기는 처음입니다.

“예전에는 환경경영평가를 하는 엔지니어링업체에서 경영 지원 업무를 했습니다. 2008년에 글로벌 경제위기가 발생 하고 회사에서 벌였던 각종 개발 사업이 중단되면서 차츰 회사가 어려워졌고 결국폐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생계를 위해 잠시 대리운전을 하면서 다른 일자리를 찾으려고 했어요.”

운전면허증이 있고 사고 이력이 없으면 누구든 도전해볼 수 있는 일. 노력한 만큼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낮과 밤이 뒤바뀐 일상을 보내는 녹록하지 않은 일과 속에서도 이창배국장은 시민의 안전한 귀가를 돕는 일을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대리운전기사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유이니까요.


예고된 위험 속에서 안전을 지키는 사람들

하지만 심야에 음주 상태의 고객을 응대하면서 감정적으로 상처를 입는 것은 물론 신체적인 위협을느끼는 순간도 종종 찾아옵니다.

“대다수 고객은 그렇지 않고 개인차는 있지만, 대리운전기사들은 폭언과 육체적인 가해를 하는 고객을 100명중 10명 빈도로 만나게 됩니다. 저 역시 실제 위협을 느껴 112에 신고 했지만 현행범으로 처벌할 수 없고, 민사소송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좌절한 적이 있어요. 산업안전보건법에 감정노동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있음에도 일부 업체에서는 오히려 기사의 서비스 정신을 지적하며 운행에 제재를 가하기도 합니다.”

대리운전기사를 둘러싼 위험은 운행 중에만 있지 않습니다. 늦은 밤 도시 외곽에서 업무가 끝나 귀가하는 중에도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하기도 합니다.

“대중교통이 없거나 다른 콜이 들어오지 않는 전원주택지 역에 가더라도 업체에서 기사의 귀가를 지원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기사들이 킥보드를 타거나 걸어서 도심으로 나와요. 심야에 익숙하지 않은 길을 다니다 보니 넘어져서 크게 다치기도 합니다. 최근 전남지역에서는 한 기사분이 업무를 마치고 도심으로 나오던 중 낙상을 입고 하반신 마비가 오기도 했어요. 명백히 업무 중 일어난 일인데도 대리운전기사는 ‘전속성’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여전히 산재 보험 적용을 받고 있지 못합니다. 사고를 당하면 일을 할 수 없는데 치료비까지 기사들이 부담해야 하는 안타까운 일이 너무 많아요.”

일반적으로 대리운전기사는 하나의 플랫폼이 아닌 여러 플랫폼과 다수 업체가 이용하는 콜 프로그램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대리운전기사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직접 발로 뛰어온 만큼, 그는 2022년 1월부터 시작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고용보험 확대 소식을 반겼습니다.

“그동안 대리운전기사는 ‘밤의 유령’으로 불렸습니다. 사회 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데다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의 적용도 받지 못했죠. 이번 고용보험 적용이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나는 시발점이 되길 바라고 있어요. 더불어 대리운전기사가 우리 사회의 당당한 직업군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데에서도 남다른 감회를 느낍니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직업

운행을 마친 후 “기사님 덕분에 안전하게 집에 올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들을 때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에 보람을 느낀다는 이창배 국장. 실제로 대리운전기사는 ‘국민의 생명•안전과 사회기능 유지를 위해 핵심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필수업무종사자입니다. 코로나19 같은 재난 상황에서 필수업무종사자의 존재는 더욱 중요합니다.

“대리운전기사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수록 국민의 안전도 보장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사회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고요. 혹시 대리운전을 이용하시게 된다면, 기사들에게 격려 한 마디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