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무림지존, 취업준비생이 되다
5화. 됐고! 그럴 거면 막힌 내 기혈이라도 좀 뚫어주시던가!

등장인물

주인공 무명선사

: 구파일방의 태두, 소림사의 방장이자 무림의 지존. 무림의 앞날을 결정짓는 마교와의 대격전 중 적의 사술에 당해 우연찮게 차원을 이동하여 현실 세계 오게 된 무림의 지존. 현실 세계에 도착한 첫날, 오덕오와 만나게 되어 그의 도움으로 현실 세계에 적응해 나간다.
무림으로 회귀하길 희망하지만, 당장 마땅히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오덕오에게 신세를 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폐를 끼칠 수는 없다고 취업에 도전한다.

주인공 오덕오

: 평범한 30대 초반의 취업준비생. 우연찮게 만난 무명대사가 무공이 깊은 무림인이라는 걸 알게 되고, 무명을 이용해 자신의 막힌 기혈을 뚫을 계획으로 그를 자신의 집에 머무르게 한다.
당장 갈 곳이 없는 무명을 이종격투기 선수로 데뷔시키고 자신은 그의 매니저가 되길 희망하지만 그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오덕오의 짝사랑녀 민지아

: 오덕오의 여자 사람 친구.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일을 하고 있다. 오랜 시간 덕오를 알고 지냈고, 자신을 향한 덕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지만, 겉으로는 쌀쌀맞게 대하며 모른 척하고 있다.
취업 문제로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찾아온 무명에게 인간적인 호기심을 느끼게 된다.

오덕오의 죽마고우 국영수

: 덕오의 표현대로라면, 남중, 남고, 공대생으로 진학한 비운의 캐릭터. 대신 그만큼 좋아했던 과목에 집중했었고, 현재는 원하던 직업을 가진 상태다.
말로는 매일 프로그램 개발자라는 자신의 직업을 한탄해 왔지만, 실상은 자기 직업에 대한 만족도도 높고 자부심도 크다.
덕오가 데려온 무명을 보고, 덕오가 따로 말하지 않더라도 덕오와 무명이 절친한 사이일 것이라 생각하고 무명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

5화. 됐고! 그럴 거면 막힌 내 기혈이라도 좀 뚫어주시던가!

글. 문수림

“봐, 이렇게 나타나실 거면서 괜히 빼고 있어.”



“말도 마라. 그나저나 어쩐 일로 주말도 아닌 평일 저녁에 불러낸 거야?”



무명에게 어색하게 목례를 하며 영수가 자리에 앉았다.

“다름이 아니라, 여긴 내가 알고 지내는 형님이신데, 사정이 있어서 속세랑 연을 끊고 사신지 오래야. 그러다가 최근에 다시 내려오셨어. 그래서 세상 물정을 잘 모르셔.”



“그럼, 나라고 세상 물정을 잘 아냐? 내가 아는 거라곤 매일 보는 코딩 몇 줄이 다야.”



“어, 그래서 널 찾아온 거야. 글쎄, 이 형님이 너처럼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다고 하시잖아. 현실적인 조언이 필요할 거 같아서.”



덕오는 잘 되었다는 듯이 눈을 빛내며 영수를 쳐다봤다. 늘 일에 대한 불만을 입에 물고 사는 영수라면, 오늘도 거창하게 불만을 쏟아내 주리라.

“현실적인 조언이라… 뭐, 그냥, 보시는 그대로예요. 피곤합니다. 남들이 아무렇게나 붙여놓은 프로그램 언어를 보고 있으면 참, 피곤해요. 근데 연봉도 제법 괜찮고요, 직접 짠 프로그램이나 수정한 놈들이 사람들 손에서 굴러가는 거 보면 보람도 꽤 크게 느낍니다. 무엇보다 AI 시대라고 하잖아요. 이제 곧 미래에는 컴퓨터 언어를 알고 다룰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크게 나뉠 거라고요. 그러니까… 기본기만 확실하게 잘 되어 있으시다면, 이 직종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덕오는 하마터면 잘근잘근 씹어 먹던 마카로니 과자를 죄다 뱉어낼 뻔했다.

“야, 네가 어쩐 일이냐? 매일 불만만 터트리던 놈이? 네가 늘 그랬잖아, 네가 하는 일만큼 웃긴 일도 없다고. 뭐라고 했더라? 그래, 맞아. ‘날아다니는 비둘기’를 프로그래밍 해야 하는데, 만들다 보면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잽싸게 ‘달리는 비둘기’가 만들어지기 일쑤고, 그마저도 너무 빨리 달리다 보니 마치 ‘비둘기가 날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켜서 틀린 부분을 찾아내서 수정하기도 벅찰 때가 많다고 했잖아! 기억 안 나?”



“내가 그런 말도 했어? 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솔직히 그건 내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부분이 크지.”



“너 오늘 왜 그래? 일을 너무 해서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냐?”



“하하하, 아냐, 그런 거. 그냥 이쪽 일을 해보고 싶은 분이시라고 하니까. 최대한 솔직하게 말하는 거야. 너도 참 별 쓸데없는 걸 다 기억하는구나. 난 요새 매일 모니터만 보고 살아서 그런지 정말 하나도 기억이 안 나. 근데, 뭐, 솔직히 좀 그래. 힘든 건 힘들지. 근데, 그건 원래 직장인들면 누구나 다 똑같아. 내가 하는 일이 최고로 힘든 일이란 말이지. 하하하. 그런데 프로젝트 하나 끝내고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 구동되는 걸 직접 보면 그만한 보람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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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오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맥주를 들이켜는 영수가 못마땅했다. 이러면 계획이 크게 틀어질 판이다.

“조언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 기본기를 쌓아 가면 좋겠습니까?”



“솔직히 어디까지 기본을 익히셨는지 몰라서 뭐라고 말씀을 드리기는 어려워요. 이쪽의 일이란 것도 분야가 굉장히 넓어서요. 단적인 예로 컴퓨터 언어라면, 대표적으로 C언어, JAVA, 파이썬 등이 있지만, 셋 다 구현하는 과정과 방법이 조금씩 다 다릅니다. 게다가 디바이스, 음, 그러니까 소프트웨어를 구현할 기기마다 그 기기를 점유하고 있는 프로그래밍언어도 다 달라요.”



덕오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번졌다. 무명 입장에서는 평생 들어본 적 없었을 외래어들이 무더기로 쏟아졌으니 정신이 멀쩡할 리가 없을 거란 생각에 절로 피어난 미소였다.

“쉽게 말해서, 노트북이나 데스크탑에 사용될 소프트웨어를 만들 때 쓰는 대표적 언어는 C언어이지만, 스마트폰에서 작동할 어플리케이션을 만들 때 쓰는 대표적 언어는 JAVA입니다. 한 사람이 모든 언어를 다 능수능란하게 사용할 수 있고, 디바이스의 개별적 특성을 모두 파악하여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의 언어라도 제대로 구사하는 데 전력을 다하는 편이고, 디바이스는 늘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가 금방 또 바뀌거나 사라지죠.”



“야, 대충 옆에서 듣기만 해도 어지러울 정도인데? 너 뭔가 대단한데? 갑자기 사람이 막 커 보여! 하하핫!”



덕오는 흥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며 슬쩍 무명의 안색을 살폈다. 예상과 달리 무명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였다. 덕오는 무명의 그런 모습을 보자 괜히 기운이 떨어져 호탕하던 웃음소리가 이내 마른 웃음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래서 더더욱 중요한 겁니다. 기초가 말이죠. 기초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면, 어떤 분야로 가든, 어떤 변화가 오든, 일단 빠르게 적응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어설프게 아는 것보단 완전 백지가 훨씬 더 좋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음, 우선은 어려운 많은 생각들을 다 내려놓고, 프로그래밍언어 중 하나부터 제대로 익혀보세요.”



“아, 학원이란 걸 다니면 기본기를 익힐 수 있는 겁니까? 그렇다면, 그 학원이란 것에 신세를 지려면 제가 치러야 할 대가도 만만치 않겠군요.”



무명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그에게는 갑자기 쏟아져 내린 생경한 외래어보다 값을 어떻게 치러야 할까 하는 걱정이 훨씬 더 직접적인 고민거리였다. 아무래도 당장 지금 신세가 빈털터리다 보니 심적으로 위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거라면 크게 걱정하실 필요가 없어요. 내일배움카드는 신청하셨죠? 그렇다면, ‘K-디지털 기초역량훈련’을 알아보세요. 국비 지원으로 진행이 되니 큰 부담이 없을 겁니다.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한 기본이라면, 그 과정을 통해서 충분히 익히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전공자라서 ‘K-디지털 트레이닝’ 과정을 이수했지만, 비전공자들을 위한 기초역량 과정이 별도로 있고, 그 과정을 이수한 사람들을 현장에서 만난 적도 있어요. 다들 실력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충분히 도움이 되실 거라고 믿어요.”

여기서 잠깐!
‘K-디지털 기초역량훈련’을 아시나요?

K-디지털 기초역량훈련은, 기초 지식이 없는 초보자도 IT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훈련비를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코딩, 빅데이터 등 디지털‧신기술 분야의 초‧중급 훈련 과정 등이 있죠.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 3,4학년, 구직자, 재직자(일부 대기업 근로자 제외) 등 취업 또는 직업능력을 높이려는 국민 누구나 국민내일배움카드를 발급받으면 50만원 범위에서 무료로 수강할 수 있습니다(훈련 시 훈련비의 10%를 부담했다가 80% 출석 시 환급).100% 온라인 훈련이라 언제 어디서나 수강할 수 있어 편리할 뿐 아니라 다양한 쌍방향 소통 프로그램을 통해 효과적인 자기 주도적인 학습 방식이라는 장점이 있습니다.
굳어있던 무명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반면, 덕오의 얼굴은 갈수록 침울해졌다.

“아, 그렇군요! 그런 좋은 방법이 있었군요!”



“그런데 그거 수업일수를 다 안 채우면 페널티가 있지 않아? 너도 그때 내가 연락하니까 출석 일수를 다 채워야 한다고 모른 척했잖아? 게다가 기초가 전혀 없는 비전공자가 듣는데 그게 되겠어? 진도나 잘 따라갈 수 있으면 다행일 거 같은데?”



“개인차야 다 있겠지. 지금 코딩에 대한 관심이 전국적으로 엄청 뜨거운 상황이야.그만큼 대부분이 다 잘 따라온다고 하더라고. 아마 다들 열정이 있으니까 그랬겠지? 그렇다면, 출석 일수야 당연히 다 채우실 테고. 오히려 안 들으면 손해 보는 기분이 들 테니까 더 열심히 듣게 되지 않을까? 하여튼, 그런 건 시작 전에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 치트키가 있잖아요.”



“치뜨끼? 그건 또 뭡니까?”



생소한 표현에 당황한 무명이 귀를 쫑긋 세우고 얼굴을 영수에게로 다가가 붙였다.

“아니, 치트키요. 치트키. 남들보다 훨씬 쉽게 갈 수가 있다고요. 제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일단 알아먹든, 못 알아먹든, 학원을 다녀보세요. 다니시면서 이해가 잘되지 않거나 하는 건 메모해뒀다가 절 찾아오세요. 정말 기본기에 해당하는 것들이라면, 제가 알려드리면 되죠. 당장에는 어렵더라도 무작정 시간이 많은 건 또 아니니까. 어렵더라도 부딪히면서 그렇게 가야죠. 그런 시작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봐요.”

덕오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야, 너 그래도 괜찮아? 정말? 늘 퇴근 후에는 사생활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노래를 부르던 녀석이? 타인을 위해 양보를 하시겠다고?”



“네가 각별한 사이니까 나한테 소개해준 거 아냐? 평소에는 우리가 서로 놀려먹기 바쁘고,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더라도 이런 경우에는 아니지. 이럴 때 친구가 좋은 거 아니겠냐.”



“어, 어, 그, 그렇지.”



덕오의 눈빛이 크게 흔들리고 있을 때, 무명은 뭔가 결심한 듯 다시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당장 내일부터 학원을 알아보리라!”



“어, 어, 그, 그래야죠.”



덕오의 얼굴이 흙빛이다 못해 자줏빛으로 변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때 이후로 덕오는 무명에게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것도 아주 꾸준하게. 무명은 덕오가 자신에게 어떤 불만이 있다는 건 이미 짐작을 했지만, 그렇다고 먼저 내색하지는 않았다. 무명은 수양(修養)을 하던 몸이었고, 살아온 세월을 따져보아도 덕오는 무명에게 증손주가 될 법한 막연한 격차라서 굳이 불안한 덕오의 상태를 따라가기보단 처음부터 덕오가 마음을 가라앉힐 때까지 기다려줄 생각이었다.
당연히 덕오는 이런 무명의 깊은 생각을 모르는 터였고, 무명이 오랜 수련으로 반로환동(返老還童-절정 무공을 익힌 고수는 육체가 전성기 시절에 머물게 된다)을 몸에 익혀 나이를 잊고 사는 존재라는 것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덕오가 겉으로는 매우 툴툴거렸지만 그렇다고 무명을 돕지 않는 건 아니었다는 거다. 오히려 더 열을 내서 무명이 실생활에 빨리 적응할수록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었다.

“개강일 전까지는 계속 타자 연습하라고 했죠? 아니, 아무리 그래도 여기가 인터넷 강국인데, 학원에 가서 쪽팔리지는 말아야지. 독수리타법이 뭡니까? 무공을 써서 독수리타법을 빠르게 할 생각하지 마시고, 손가락 전체를 다 쓰시라고요. 열 손가락이 다 정해진 자리가 있다니까요? 정신 좀 차려요! 학원에서 수업 중에는 내가 옆에 있어줄 수도 없다고요!”



“아, 지적해주어서 고맙구려. 그런데 혹시 그래서 화가 나신 겁니까?”



“아니, 화를 내긴 누가 냈다고 그래요? 독수리타법으로 그걸 치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답답해서 그러지.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코딩을 짜겠다는 거예요? 아니, 모르겠다. 나도 모르겠어. 손가락 하나로 꾹꾹 누를 거면, 그냥 주먹 꽉 쥐고 링 위에 오르는 게 훨씬 편할 텐데…”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기로 하지 않았소? 아무리 그래도 내 개인적인 영달(榮達)을 위해 무공을 사용할 수는 없소.”



“네, 네. 어련하시겠어요. 평화를 지켜야 할 지존께서 협잡꾼들이나 왈패, 주먹패들마냥 사사롭게 주먹을 휘두를 수야 있겠어요. 아이고, 난 이제 모르겠다. 돌아갈 길이 급하시다는 양반께서 빠른 지름길을 두고 삼천포를 돌아서 샛길로 빠지시겠다는데 그걸 내가 무슨 수로 말린담?”



덕오는 잔뜩 심술이 난 표정으로 몸까지 배배 꼬아가며 비아냥거렸다. 무명은 그런 덕오의 모습에 그저 껄껄껄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려. 그런데 솔직히 당장에는 돌아갈 길에 대한 어떠한 실마리도 없는 상태요. 이곳의 소림사도 내가 살던 세계의 소림사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걸 최근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알게 되었소. 아마도 부처님께서는 제가 여기서 어떤 깨달음을 얻길 바라시는 것 같습니다. 헌데, 그렇다고 마냥 도만 닦고 있어서는 지금까지 연이 닿은 모두에게 폐만 될 터. 소승이 어서 빨리 취업을 하여 몸을 바로 세우고 신세를 갚는 게 최선일 것 같습니다. 돌아갈 방법 같은 건 그런 이후에 걱정해보도록 하죠.”



“됐고! 그럴 거면 막힌 내 기혈이라도 좀 뚫어주시던가!”



천연덕스럽게 자판 연습을 하며 대꾸하는 무명이 얄미워서 결국 덕오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기혈을 당장 뚫고 싶었던 거였소?”



“아니, 눈치도 빠른 양반이 그걸 이제야 아셨어요? 그게 되면 취업도 문제없을 거라고 먼저 꼬드긴 사람이 누구였는데! 혹시 그거 다 거짓말이었어요?”



열을 내는 덕오를 보면서도 무명은 또 한 차례 껄껄 웃어 보였다.

“기혈을 뚫고 나서는 처사께서 직접 무공을 익히고 주먹을 쓰시게요?”



“엥? 네? 뭐라고요? 아니, 무슨 말을 해도 또 그렇게…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덕오가 갓 씻어낸 홍당무마냥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속내를 들켜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자 자신의 심장 소리가 전쟁터 대포 소리처럼 크게 울리기 시작해서 아찔해질 지경이었다.

“하하하, 아닙니다. 저도 농담을 해보았습니다. 그럼, 당장 뚫으러 갑시다. 어디 이 근방에서 가장 높은 산이 어디요?”



“네? 갑자기 사, 산? 산이라고요?”



“그렇소. 기혈을 뚫는 데 있어서는 높은 산을 등반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소. 말이 나온 김에 당장 앞장서시오. 후다닥 다녀와서 또 자판 연습도 하고 외래어도 익혀야 하지 않겠소? 그 영어라는 꼬부랑글씨는 한글에 비해 영 익히기 까다로운 게 아니구려.”



무명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신발을 신고 있었다. 덕오는 옷차림을 돌아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당장 눈앞의 구두를 꺾어 신으며 현관을 나서는 무명의 뒤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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