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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타이틀이미지 꽃씨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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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의 시간

서브타이틀이미지 꽃씨 심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인 ‘피보팅(Pivoting・상황에 맞춘 유연한 사업 전환)’을 오래 전부터 실천하고 있는 기능한국인이 있습니다.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통해 ‘자동화의 달인’으로 떠오른 ㈜영남테크놀로지 임상홍 대표가 그 주인공입니다.

글 강진우 | 사진 김지원

기술인의 길에 들어서다

경북 의성의 한 농촌에서 나고 자란 임상홍 대표는 일찍이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를 원했습니다. 맹목적으로 학업을 이어 가기보다는 얼른 기술을 익혀 사회에 진출하고 싶었던 겁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하길 원하는 부모님과 한동안 기 싸움을 벌인 그는, 결국 고집대로 경북기계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기술인으로서의 첫발을 뗀 순간이었습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1학년 때부터 과별로 4명씩 기능훈련생을 선발했어요. 학교를 대표해 여러 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하며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죠. 열심히 공부하고 실습해서 여기에 들어갔고, 수업 후 9시 이후까지 과제를 수행할 정도로 최선을 다해 기계 제도 기술을 배웠습니다. 덕분에 동기들보다 뛰어난 제도 실력을 갖출 수 있었죠.

3학년이 된 임상홍 대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 어느 곳에 취업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대기업에 취업하면 안정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었지만, 기술을 마음껏 발휘하기 힘들었고, 중소기업에 취업하면 곧바로 실전에 투입될 수 있었죠. 오래전부터 기술인으로서 일가를 이루겠다고 다짐해 온 그는 1989년, 당시 공장 자동화 설비 분야에서 앞서 나가고 있던 한 중소기업의 설계부에 입사했습니다.

“예상대로 출근하자마자 설계도면 업무를 맡았습니다. 위계질서가 뚜렷했던 대기업에서는 꿈꿀 수 없는 일이었죠. 고등학교에서 기능훈련생으로서 한층 깊은 기술 훈련을 받아서인지, 업무를 진행하는 데 있어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대학교에서 기계 설계를 전공하고 입사한 3년 차 선배에게 설계도면 작업을 가르쳐 줄 정도였죠. 덕분에 2년간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일했고, 이후 해병대에 입대했습니다.”

과감한 도전으로 인정받은 기술력

30개월간의 군 복무 후 사회로 돌아와 보니, 다니던 회사는 부도가 난 상태였습니다. 대신 제대 열흘 만에 설계실 부서장이 새로 차린 회사에 들어갔는데요. 아무래도 회사 규모가 작아지다 보니 설계도면 업무 외에도 자동화 설비 제작 전반에 대한 일을 두루 맡았습니다. 회사가 성장할수록 임상홍 대표의 기술력과 사업 수완도 늘어갔죠. 그러던 중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아버지가 위암 수술을 받게 되면서 집안일을 돕기 위해 회사를 나왔고, 아버지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1998년, 영남테크놀로지의 전신인 설계 사무실 영남엔지니어링을 설립했습니다.

“처음에는 기계 설계를 주로 맡았는데요. 한 업체에서 가공까지 해 보지 않겠냐고 제안해 주시면서 부품 제작에도 직접 나섰습니다. 내친김에 염색, 섬유, 자동차 부품 제작, 자동화 설비 제작 등으로 사업을 점차 확장했죠. 탄탄한 설계 기술을 갖추고 있는 데다가 설계한 제품을 직접 가공하다 보니 완성도도 매우 높았고, 회사 규모도 점점 커졌습니다. 2002년에는 ㈜영남하이닉스를 설립해서 반도체 관련 부품 자동화 보조 설비도 설계, 제작하기 시작했죠.”

이런 와중에 회사의 자동화 설비 제작 능력을 널리 인정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대구의 한 섬유공장에서 염색 약품을 자동 배합하는 설비를 제작해 달라고 요청했는데요. 기존에는 이탈리아에서 설비를 수입했는데, 워낙 비싸고 A/S도 제대로 안 되다 보니 국산화를 요청한 것입니다. 임상홍 대표는 지금껏 쌓아 온 자동화 설비 제작 노하우를 총동원해 ‘자동조제이송장치’를 개발, 납품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2006년 산업자원부 장관 표창을 받으며 회사의 기술력과 혁신성을 공인받았습니다.




변화는 성장의 원동력이다

그 무렵 임상홍 대표는 한 회사로부터 글로벌 완성차 회사의 자동차에 들어가는 동력전달장치 부품을 만들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지금껏 뜨거운 도전정신으로 사업을 키워 왔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더불어 수주받는 자동차 부품이 점점 많아지자, 회사의 방향을 서서히 자동차 부품 제조 쪽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이는 현재 영남테크놀로지와 영남하이닉스의 주력 사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자동화 장비 제작 수주업에서 자동차 부품 제조업으로 사업을 전환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가 현실화되면서 부품의 최종 납품처인 미국 유명 자동차 회사가 파산보호신청을 했고, 덩달아 저희 사정도 어려워졌죠. 하지만 저희의 기술력을 눈여겨본 독일의 유명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납품 의뢰가 들어왔고, 덕분에 지금껏 큰 어려움 없이 사업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꾸준히 쌓아 온 기술력이 위기에 빠진 회사를 구해 준 셈입니다.”

한편 임상홍 대표는 업종을 변경하는 가운데에도 자동화 설비 제작 기술력을 버리지 않고 생산 현장에 고스란히 적용했습니다. 자동차 부품을 보다 효율적으로, 정확하게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관련 특허만 5개이며, 이후 지속적인 기술 개발로 특허를 꾸준히 출원할 계획입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영남테크놀로지와 영남하이닉스의 자동화 수준은 98%에 달하며, 코로나19 이후 심해진 인력 변동 와중에도 문제없이 생산 공정을 가동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사람이 변화를 두려워하는데요. 저는 ‘모든 변화는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 끊임없이 성장하도록 독려하니까요.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이러한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기능한국인이라는 명성에 어울리는 활약을 펼쳐 나가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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