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APRIL / vol. 551
  • >
  • 희망일터 >
  • 인생 2막

서브메인이미지

요즘 박원규 씨는 경기도 하남에 있는 사회적 기업으로 매일 출근합니다.
국내산 콩으로 만든 식품을 생산하는 이곳에서, 박원규 씨는 식품업계에서 30년 넘게 쌓아온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하고 있습니다.

정라희 / 사진김지원

나는 아직 일하고 싶다

지난 2016년, 정기 건강검진을 받은 박원규 씨는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건강이라면 자신있었던 그에게 의사는 ‘대장암 3기’라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일평생 ‘일’을 곧 ‘자신’으로 여기며 앞만 보고 달려온 그에게 어쩔 수 없이 찾아온 휴식기. 다행히도 2년여의 치료 끝에 그는 다시 출근할 수 있 을 만큼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다니던 회사 사정으로 그대로 퇴직자가 되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이제껏 열심히 일했으니 이제는 쉬라’고 권유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 병마에 시달리고 나니까 하루하루가 더욱 소중하게 다가왔어요. 소일거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에는 그동안 일해온 경험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급여와 상관없이 자신을 받아주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겠다는 마음으로 여러 식품회사에 입사지원서를 냈습니다. 하지만 대기업에서 21년, 중소기업에서 임원으로 12년 동안 근무해온 과거의 경력이 무색하게 ‘나이’라는 장벽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끼리 위로 삼아 ‘나이는 숫자’라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30여년 동안의 직무 경험과 역량을 작은 회사에 ‘나눔 한다’는 마음으로 젊은이들이 지원하기를 꺼리는 조건의 회사만 골라서 지원했는데도, 채용하는 입장에서는 제 나이나 경력이 직무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겼던 것 같아요.” 냉정한 현실의 벽 앞에서도, 박원규 씨는 재취업의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던 중에 우연히 맞춤형고용지원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노사발전재단의 광고를 보았습니다. 그렇게 노사발전재단 서부지원센터의 문을 두드렸지요.

새로운 적성을 찾아서

  • 노사발전재단 서부지원센터에서 일대일 상담을 받으며 진행한 적성검사에서, 박원규 씨는 뜻밖의 결과를 받았습니다. 30년 넘게 식품업계에서만 일해온 그에게 ‘강사’라는 진로 적성 결과가 나온 것이죠. 그는 늦은 나이에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내심 의문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상담을 맡은 조수정 선임 컨설턴트는 ‘60대는 아직 할 일이 무척 많은 나이’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죠.

  •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에게는 2급 정교사 자격증이 있었습니다. 전공은 경영학이지만 만약을 대비해 교생 실습을 하고 자격증도 취득했지요. 회사에 다니면서 한참 잊고 지내다가 상담을 받으면서 문득 그때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강단에 설 준비를 했던 셈이지요.”

  • 박원규 씨는 노사발전재단에서 지원하는 생애경력설계와 재도약프로그램 등에 참여하면서, 인성지도사와 심리상담사 등 각종 민간 자격증 취득에도 도전했습니다. 하지만 자격증이 있어도 베테랑 강사들이 포진한 교육업계에 진입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용기를 잃지 않고 비슷한 상황에 있던 사람들과 취업동아리를 만들어 구직활동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러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를 얻었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기업에 ‘HACCP(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인증’ 업무를 지원하는 어드바이저로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전문강사 양성 과정인 업종 특화 전직지원 서비스 교육을 이수하며 그의 강점을 살린 교육 콘텐츠 개발에도 나섰습니다. 더불어 관련 교육을 통해 직업능력개발훈련교사 자격증과 NCS(국가직무능력표준)확인 강사 승인을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을 수 있었지요.

  • “직업능력개발훈련교사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고용노동부 관악고용지청 담당자와 여러 차례 전화 상담을 했습니다. 저 말고도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수십 명은 될 텐데, 30분 가까이 저에게 집중하시며 궁금한 점에 정성스럽게 답을 해주셨어요.”

다시 시작된 봄날

덕분에 박원규 씨는 2019년 중순 블라인드 채용 전문기업에 교육 강사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후에는 공공기관과 공기업 등 채용 면접위원으로 일하면서 NCS직업교육지도사와 NCS 활용면접관 자격 검정 교육강사 활동도 병행했습니다. 난관을 넘어 새로운 길을 개척한 그의 이야기는 ‘2020 신중년 인생 2 막 수기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강의 업무를 대폭 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지난 시간 그가 흘린 땀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HACCP 도입을 준비하는 사회적 기업 ㈜친환경식품에 취업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HACCP 담당자로 들어왔는데, 일을 시작하고 보니 규모가 작은 사회적 기업에서는 모든 사람이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겠더라고요. 덕분에 제가 식품업계에서 30년 넘게 쌓아온 노하우를 마음껏 펼치고 있습니다.”

현재 박원규 씨는 HACCP인증을 비롯해 인사와 노무, 재무, 생산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재취업을 준비하며 경험한 것들을 더 많은 중장년에게 나누기 위해, 강의도 기회가 닿는 한 계속해서 이어 나갈 생각입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도구적인 삶이었던 것 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동반자적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무한한 열정을 본받고 싶습니다

‘준비한 사람에게 기회가 온다’고 했던가? 박원규 님과 일대일 상담을 하면서 내내 이 말이 떠올랐다. 강사를 희망하는 박원규 님을 위해 내가 지원한 일은 관련 교육과 일자리 정보 안내였다. 하지만 박원규 님 스스로 길을 개척한 면이 크다. 인터넷 검색은 물론 직접 회사와 기관에 문의하며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셨다. 각종 교육 참여, 일자리사업 지원, 강의안 작성 등을 비롯해 자신의 역량을 알리는 자기PR도 확실하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나도 인생2막을 준비할 때 박원규 님처럼 적극적으로 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에 훌륭한 롤모델이 되어주신 박원규 선생님! 앞으로 그 열정을 본받아 저도 부지런히 살겠습니다.

조수정 선임 컨설턴트 노사발전재단 서울서부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