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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을 단절하다

2년 전에 비무장지대에서 목함지뢰 3개가 폭발하면서 하사관 두 명이 피해를 입었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이 사고로 인해 하사관 한 명은 두 다리를, 다른 한 명은 발목을 잃어야 했습니다. 절망으로 가득했던 이들에게 의족으로 새로운 날개를 달아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중앙보훈병원 보장구센터의 심우섭 대리입니다.
[글 노혜진 사진 윤상영]

교통사고가 바꾸어 놓은 삶

심우섭 대리는 원래 태권도 선수로 활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2001년 돌연 그에게 사고의 아픔이 찾아옵니다. 교통사고로 인해 왼쪽 다리를 절단하고 왼쪽 팔에는 큰 부상을 입게 된 것이죠. "당시에는 진짜 죽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그래도 의족도 맞추게 되고 재활치료도 거치면서 그런 생각은 사라졌죠. 하지만 눈앞이 캄캄한 건 그대로였어요." 선수로서의 생활은 더 이상 할 수 없었기에 심우섭 대리는 앞날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에게 뜻밖의 권유가 들어온 것은 그때였습니다. 심우섭 대리의 의족을 맞춰 주었던 업체의 사장님이 이 기술을 배워볼 생각이 없느냐는 언급을 하신 거죠. "당시가 2002년이었는데요, 의료보장구 전문 학과가 생기는 시기였어요. 기술을 배워 두면 좋겠다는 생각에 한국복지대학으로 진학했죠." 그렇게 심우섭 대리는 의료보장구 학과에 다니면서 지금의 아내와도 인연이 되어 결혼까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의료보장구를 저의 업으로 삼을 마음을 먹으면서 인생이 바뀐 거죠. 제가 만나는 사람의 90% 이상은 장애인인데요, 1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분들을 만나면 자세가 낮아지고 삶에 대한 생각도 많아지게 되죠."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 대회의 숨가빴던 순간들

심우섭 대리는 2016년 프랑스에서 열린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 대회에 출전하여 보장구 부문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습니다. "보장구 부문은 정말 일반 기능대회에는 없는 부문이에요. 오직 장애인기능대회에만 존재하죠. 처음에는 그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기술직에 종사하는 장애인이라는 것 때문에 기능대회 보장구 부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심우섭 대리.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보장구 부문은 출전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대회 자체가 무산되기도 했다고 해요. "제가 출전했을 때도 지방대회는 하지를 못했어요. 바로 전국에서 출전 신청을 한 사람들을 모아서 전국대회를 열게 됐죠. 저는 그 대회가 끝나고 난 후 국가대표를 선발하는 자리에서 올림픽 대표가 되었죠." 올림픽 출전을 위해서 대부분의 선수가 합숙에 들어가지만 심우섭 대리는 분야의 특수성 때문에 합숙에는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의료보장구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큰 장비가 많이 필요한데 합숙소에서 그런 시설까지 갖출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죠. "4개월이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 중앙보훈병원을 연습실로 삼았죠. 지도위원님은 한서대학교 의료보장구 학과 교수님이셨고, 부지도위원님은 저희 중앙보훈병원 보장구센터 제작부장님이셨어요. 두 분 다 제가 잘 아는 분들이셨기에 일을 하는 과정 안에서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받았습니다." 심우섭 대리는 같은 업종에 있기에 알고 있었던 지도위원들과 연습기간을 계기로 더욱 친밀해졌다고 해요. 프랑스에서 열리는 대회의 특성상 한국에서는 접해 보지 못하는 온갖 소도구와 재료들이 있는데, 지도위원님이 꼼꼼하게 지원을 해 주어서 연습을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올림픽 과제는 보조기 만들기였어요. 관절염이 있어서 무릎에 통증이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기구였죠. 사진으로는 봤는데 재료를 찾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유통업체에 연락을 해 봐도 찾을 수가 없었죠." 다행히 올림픽 2주 전에 새로 오픈한 시험 정보 덕분에 어떤 재료를 쓰는지는 알 수 있게 되었지만 재료 수급이 문제인 상황이었다고 해요. 프랑스 출발 3일 전에 간신히 부품을 조달받아서 한 번 연습해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올림픽은 이틀에 걸쳐서 진행이 됐어요. 1일 차는 오후 2일 차는 오전에 했는데요, 처음에 선수들을 집합시켜서 교육을 하는 과정에서 선수단에서도 보장구 재료를 모르는 사람과 처음보는 사람들이 있었죠. 나는 일단 한 번은 접해 봤기 때문에 자신감은 조금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시작된 대회에서 심우섭 대리는 예정된 시간인 6시 바로 전인 5시 59분 59초에 완료 벨을 눌렀다고 합니다. "자신이 있었는데 내 손에 안 맞는 공기구들이 나오니까 약간의 실수가 생겼어요. 막판에 있던 그 실수 때문에 등수에도 못 드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긴장했죠." 선수단 모두가 긴장하던 순간, 심우섭 대리는 가슴이 조여지는 그 긴박한 순간에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안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보장구 분야 출전자에게 도움이 되고파

심우섭 대리는 메달을 획득하게 되면서 기능대회 같은 부문에는 출전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나가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대회를 거치면서 쌓아온 경험을 다음 출전자에게는 꼭 알려 주고 싶다는 소망도 내비쳤어요. "저는 보장구 분야 대회에 출전하면서 조언을 많이 듣지 못했어요. 지도위원님들은 방법을 자세히 알려 주셨지만, 대회에 실제 참가해서 경험해 보니 알고 가면 좋았을 사항들이 많더라고요. 누구라도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응할 생각입니다." 심우섭 대리는 실제 대회에 나가 보니 타임테이블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가 정말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어떤 부분에 점수가 어떻게 배정이 되고 그곳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을 얼마나 할애하는지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또 자신이 일하고 있는 중앙보훈병원에 제작 기구가 구비되어 있기 때문에 트레이닝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기술을 전파해 줄생각도 있다고 합니다. "중앙보훈병원은 보장구 제작에 다양한 투자를 하는 곳입니다. 보장구는 새로운 기계도 계속 나오고 있고 신재료도 많이 나오고 있지만 영세한 업체가 많아서 이런 흐름을 잘 따라 가기가 어려워요. 저는 새로운 재료와 새로운 기술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장애인들이 행복하게 웃을 수 있도록

심우섭 대리가 보장구 제작을 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자신이 제작한 의족을 차고 환자가 '걸어 나가는' 순간이라고 해요. "저는 처음에 일을 시작할 때 보장구 분야에서 국가대표가 되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졌어요. 실제 국가대표가 되고 나니 이제는 더 좋은 제품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드네요." 경제적인 형편 때문에 의족이나 의수가 필요한데도 제작을 망설이고 있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심우섭 대리. 두 손을 쓸 수만 있다면 할 수 있는 직업이니 관심 있는 누구라도 도전을 해 보면 좋겠다는 얘기도 전했습니다. 심우섭 대리의 아이들은 "우리 아빠는 로봇다리를 만들고 로봇다리를 가지고 있어요."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할 정도로 의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처럼 많은사람들이 의족과 의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전했습니다. 항상 미소를 잃지 않으며 낮은 자세로 사람들을 대하는 심우섭 대리의 이런 꿈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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