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구독신청

테스트 내 일(my job)이 내일(tomorrow)이 될 때까지! 월간 "내일"이 국민과 함께합니다.

이름
배송받을 주소

* 이름: 김열심 | 주소 입력 예시 서울특별시 중구 충정로 OO

*매월 초 발행인 책자배송 완료 후에 구독신청을 해주신분들께서는 익월호부터 배송이 시작됩니다.

구독신청

서브타이틀이미지 꽃씨 심다

home >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들 > 옛 직업을 찾어서

옛 직업을 찾어서

P극장의 미술부. 10평 남짓한 제작실에는 얼굴 하나가 어른의 키보다 더 큰 미모의 여배우가 활짝 웃고 있다. 며칠 뒤면 극장 입구에 커다랗게 세워져 길가는 행인의 걸음을 멈추게 할 간판의 마지막 손질에 제작실은 쉴 틈이 없다.
― <경향신문> 1977년 4월 23일

1960년대 개봉관이 모여 있는 거리, 어느 극장에 들어가도 요즘 인기라는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사람들은 두리번거리며 극장 간판을 훑어 보았습니다. 어느 극장의 간판이 더 잘 그렸나, 내가 좋아하는 배우와 얼마나 더 닮았나, 따져보는 것이죠. 같은 영화라도 더 많은 관객을 불러오는 차이, 그것은 극장간판제작원의 붓끝에 달려있었습니다.
정리 편집부

  • 요즘으로 치면 화가이자 광고인

    1910년에 서울 종로의 단성사를 비롯한 상설 영화관들이 문을 열면서, 화가들이 극장으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신문 광고나 포스터만으로 상영작 정보를 접하는 관객들에게 극장 간판은 관객의 발길을 이끄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래서 큰 극장들은 ‘미술부’를 따로 만들어 솜씨 좋은 화가들을 초빙했습니다. 극장간판제작원이 된 이 화가들의 임무는 예비 관객의 시선을 잡아끌 멋진 작품을 그려내는 것이었죠. 요즘이야 영화 배급사에서 광고나 포스터, 간판을 디자인해 배포하지만, 극장간판제작원들이 활약하던 때 극장 간판은 오롯이 그들의 몫이었습니다. 영화의 주요 장면을 그려 넣기도 하고, 주인공들의 얼굴을 너른 간판 위에 실사처럼 그려 넣기도 했습니다. 누가 그리느냐에 따라 배우의 얼굴이 부드러워 보이기도 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인상파가 되기도 했지요.


    사다리를 타고 배우를 그리다

    초창기에는 커다란 종이에다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 간판에 붙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페인트로 직접 그리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작은 극장의 간판 은 서너 시간 안에 그릴 수도 있었지만, 가로 길이가 10m를 훌쩍 넘는 대형극장의 간판은 적어도 사흘은 걸렸다고 합니다. 이전의 간판을 내려 흰 페인트로 바탕을 칠하고 밑그림을 그린 다음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색칠하는 과정이 복잡했기 때문입니다. 극장간판제작원의 품도 많이 들어서 미술부장이라 불리는 베테랑 극장간판제작원의 지휘 아래 분업이 이뤄졌습니다. 능력이 좋은 미술부장은 미술부 신입들의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멀티플렉스의 등장과 함께 역사 속으로

    국내 영화산업이 부흥하기 시작하면서 1980년대 전성기를 맞았던 극장간판제작원들은 1990년대, 인쇄 및 출력기기의 발달 그리고 극장 구조의 변화 로 위기를 맞았습니다. 단관 극장들이 멀티플렉스(복합관) 극장으로 대체되면서 대형 간판이 설 자리를 잃었고, 컴퓨터와 인쇄기로 찍어내는 플렉스 간판이 그림 간판을 대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1990년대 초까지 100여 명이 남아있던 극장간판제작원들은 2000년대 들어 모두 극장을 떠났습니다. 이제는 그들의 작품을 극장이 아닌 박물관에서나 만날 수 있지만 간판 하나하나를 작품으로 승화시킨 극장간판제작원의 예술혼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웹진구독신청

30117 세종특별자치시 한누리대로 422 정부세종청사 11동 고용노동부
All contents (c) Copyright Ministry of Employment and Labor reserved.[개인정보처리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