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든 이후 산업 전반에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다양한 디지털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의료 분야 역시 마찬가지로,
세계 각국에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질병을 보다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디지털치료기기의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는 중이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재활의학과 전문의로서 환자들의 건강한 삶을 고민하며
의료 현장에서 디지털치료기기의 활용 연구를 이어가고 있는
방명환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글. 김지연
사진. 고인순
디지털치료기기는 질병을 예방·관리·치료하기 위해 환자에게 근거 기반의 치료를 제공하는 의료기기로서의 소프트웨어를 말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치료제가 손안의 휴대폰이나 태블릿 속의 앱으로 구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치료제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에서 명명한 정식 명칭은 디지털치료기기입니다.
디지털치료기기는 일반적으로 모두가 처음 접하는 치료법이다 보니, 많은 분들이 디지털치료기기를 쉽고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사용 순응도를 향상시키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심장질환 환자들에게 심장재활 디지털치료기기를 적용해 그 유효성과 안전성을 평가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모바일 기술과 함께 빅데이터, AI 기술이 개발된 것이 디지털치료기기가 태동할 수 있는 계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약물과 같은 기존 치료제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 기술들이 사용되면서부터 디지털치료기기가 연구 개발되기 시작했고요. 전통적인 약물이 개발에 10년 이상 소요되는 반면 디지털치료기기는 상대적으로 개발 시간이 짧고, 시공간 제약 없이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기존에 병원 중심으로 이뤄지던 치료를 환자 중심 치료로 전환할 수 있게 돼 충족되지 못했던 의료 수요를 충족시키고, 의료 비용도 감소해 전체적으로 의료 시스템 효율성을 향상시킨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분야는 약물 남용, 불면증과 같은 정신과 영역입니다. 세계 최초의 디지털치료기기가 약물 남용 환자를 대상으로 한 제품이었고, 국내에서도 불면증 치료를 위한 디지털치료기기가 최초로 식약처의 허가를 받았습니다. 수면 위생교육이나 인지행동치료 등을 디지털치료기기에 접목시켜 수면제를 먹지 않고도 불면증을 치료하는 방식입니다. 그 밖에도 당뇨, 고혈압, 암 등 다양한 의료 분야에서 디지털치료기기의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데요. 재활의학과 영역에서도 뇌졸중 후 발생하는 시야장애와 폐질환 환자를 위한 호흡 재활 디지털치료기기가 최근 식약처의 허가를 받았습니다. 또한, 근골격계 질환으로 인한 통증이나 수술 후 재활 환자를 대상으로 운동 교육 및 재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치료기기도 연구 개발 중입니다.
세계 디지털치료기기 시장은 연평균 약 20% 성장해 2025년에 89억 달러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되며, 국내 시장도 연평균 27% 성장해 내년에 5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국, 독일 등에서 디지털 치료기기가 먼저 사용되기 시작했고, 국내의 경우 여러 규제기관과 제반 환경 여건상 시작이 조금 늦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올해 11월 기준 4개의 디지털치료기기가 식약처 허가를 받아 처방될 준비를 마쳤습니다. 우리나라 의료는 단일 보험이라는 특징이 있고, 지지적인 규제 정책과 인프라 구축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기에 앞으로 우리나라가 디지털치료기기 산업에 있어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기본적으로 의학과 헬스케어 기술에 대한 공부가 필수겠죠. 공학 및 제품 설계, 보건 정책 및 규제 등에 대한 공부도 필요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에 대한 호기심과, 의료 현장에서 의료진과 환자의 필요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좋아하는 명언 중에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한 ‘Connecting the dots(인생의 점을 연결하라)’라는 말이 있는데, 현재 배우고 경험하는 것들이 나중에 어떻게 연결될지 알 수 없으니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입니다. 학생에게는 전공에 국한되지 말고 독서, 여행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아보라는 조언을, 취업 준비 중이거나 현직에 계신 분들께는 전문성을 한층 더 다듬고 접점이 있는 분야를 찾아 공부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제 막 태동해 점차 커지는 시장이기 때문에 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함께 활동했으면 합니다. 처음부터 디지털치료기기 전문가가 되고자 하면 막막한 마음이 들 텐데요. 먼저 본인의 전공 분야가 무엇이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를 추천드리고, 디지털 헬스케어의 흐름과 다양한 기술에 호기심을 갖고 공부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시장의 필요를 파악하고, 그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입니다. 그 지점이 바로 디지털치료기기 전문가로서의 첫걸음이 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