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FEBRUARY/ vol. 561
vol. 561
  • >
  • 힐링일터 >
  • 미디어 속 노동읽기

서브메인이미지

전교 1등과 전교 꼴등. 높은 등수가 삶의 전부인 듯 보이는 학교에서
두 사람은 다큐멘터리 주인공으로 꼽힐 만큼 다른 존재입니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하고 일터에 나선 지금. 더 이상 등수는 중요하지 않지요.
저마다의 치열함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만나볼까요?

박채림 / 사진제공SBS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가난했으면 좋겠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연수의 꿈은 평범하게 사는 것입니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며 생활고에서 벗어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지요. 전교 꼴등 최웅과 짝이 되어 학교 생활하는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찍고 싶다는 제안에 응한 이유도 출연료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공부도 안 하고 노트에 그림이나 끄적이는 최웅에게 자꾸 마음이 끌리니 말입니다. 소박하지만 행복했던 연애의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대학에 입학하고 각자의 삶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히고 맙니다. 먹고 살 걱정 없이 피터팬처럼 꿈을 좇는 웅이가 연수에겐 버거웠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삼촌의 빚까지 떠안게 되자 마음이 더욱 답답해집니다. 그 흔하다는 해외연수나 대외활동 경험은 없지만 성실하게 살아온 연수, 취업에 성공해 그토록 원했던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 건물 일러스트,
제가 한번 그려보겠습니다

웅이와 연수는 결국 대학을 졸업하기 전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왜 헤어져야 하냐고 묻는 웅이에게 연수는 떠나는 순간에도 팍팍한 현실에 대한 절망감을 토로하지 않았죠. 연수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에 성공하는 동안, 웅이는 조금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일명 밥수저를 타고 태어난 덕에 돈 걱정 없이 그리고 싶은 그림도 마음껏 그렸죠. 그렇게 오직 움직이지 않는 건물과 나무만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습니다. 유명세도 얻었고요. 하지만 뭔가 빠진 듯 공허한 순간이 찾아오는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5년 전 헤어진 연수가 찾아왔네요. 자신이 홍보하는 건축물을 그려달라면서요. 게다가 방송국에서는 그 시절 다큐멘터리의 후속편으로 성인이 된 그들의 모습을 담고 싶다는 제안까지 합니다. 다시 돌아온 연수가 반갑기도 밉기도 한 웅이. 이 계약, 체결해야 할까요?

작가로 못다 이룬 꿈,
1인 자영업자로 다시 일으켜 세워보려고요


드라마 작가로 데뷔한 후 단 한 작품만에 때려치웠습니다. 그동안 번 돈으로 호기롭게 장사를 시작했지요. 술과 음식, 사람이 좋았으니까요. 그런 솔이에게 요즘 고민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코로나19 시국 때문인지 파리만 폴폴 날리는 가게 사정이고요. 나머지 하나는 단짝 연수가 최근 전 남자친구 웅이를 만난 후 변했다는 사실입니다. 술 마시러 와서는 혼자 화를 냈다가, 갑자기 어디론가 훌쩍 사라지더니, 이젠 또 얼굴에 배실배실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조금 이상해 보이기도 하지만, 뭐 어때요. 잃어버린 첫사랑이 내 친구의 고단한 삶을 위로해줄 수 있다면 두 팔 걷어 부치고 도와줄 작정입니다. 그나저나, 오늘은 또 왜 이렇게 손님이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