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의 열정지수
발달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일하는 사회로
(주)베어베터가 실현하는 장애인 고용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회사’를 지향하는 사회적기업이 있다. 2021년 설립해 발달장애인 290여 명(비장애 포함 420여 명)이 함께 일하고 있는 ㈜베어베터이다. 어느새 햇수로 14년 차인 이곳은 최적화한 근로 환경 조성과 각종 복지 제공 등으로 지속 가능한 장애인 고용에 앞장서 왔다. 나아가 550여 개의 고객사와 협업하며 다양한 분야, 그리고 폭넓은 지역에서 새로운 일자리 창출, 고용 격차 축소 등 긍정적 영향을 확대해 나가고자 한다.
글. 오민영
사진. 김경수
장애가 아닌 근로 여건에 초점 맞춘 발상의 전환
‘발달장애인이 대체 어떤 업무를 해낼 수 있을까?’
발달장애인 고용이라는 이슈가 흔히 부딪히기 마련인, 우리 사회의 견고한 고정관념이다. 그래서일까. 지난 2025년 5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24년 6월 기준으로 취업 중인 발달장애인은 전체 가운데 30.5%(약 6만 8,000명)에 불과하다. 같은 시기의 대한민국 전체 장애인고용률이 약 40%라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현저히 낮은 셈이다.
하지만 베어베터와 같은 기업들 덕분에 이러한 고정관념은 변화를 맞이하며 바뀌어 나가고 있다. ‘곰이 세상을 이롭게 만든다(Bear makes the world better)’라는 의미가 담긴 이곳 사명에서 곰은 우직하고 꼼꼼한 손길을 가진 발달장애인 근로자를 의미한다.
이름으로 알 수 있다시피 베어베터에선 발달장애인 사원이 충분히 해낼 수 있도록 재설계된 직무를 팀으로 구성해 충실히 해내고 있다. 각자 해낼 수 있는 속도 만큼의 업무를 수행하지만, 제품・서비스의 핵심인 품질과 납기를 어기는 법이란 없다. 원활한 사업 운영이 고용 안정성과 직결한다는 데 이진희 대표를 비롯한 모든 사원이 깊이 동감하는 까닭이다. 아울러 발달장애인 특성을 고려한 근무 환경 조성이 직무 접근성과 업무 집중도를 한층 높이는 데 이바지했다.
“발달장애인 사원과 함께 일하기 위해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따라서 ‘발달장애 때문에 못한다’는 생각을 ‘발달장애인이 할 수 있게 바꿔야 한다’는 생각으로 전환하는 것이죠. 그러려면 먼저 발달장애에 대해 이해하는 문화를 먼저 만들어야죠. 그것에서 출발해서 업무를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게끔 각 과정을 간결하게 바꾸고 세분화했습니다.”
이 대표가 공들여 완성한 체계는 연 매출 159억 원이라는 성과를 창출했다. 더불어 발달장애인 사원에게는 직접 땀 흘려 일한다는 자부심과 가족 간 화목을 선사했다.
누군가의 가능성은 능력이 아니라,
그것을 믿어주는 환경에서 피어난다
원활한 소통이 직무 몰입과 자부심으로
누구나 유난히 출근하기가 버겁고 힘든 날이 있듯이, 발달장애인 사원 역시 그럴 때가 있을 테다. 상대적으로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명확하게 표현하기 쉽지 않아, 베어베터에선 직원의 행동이 평소와 다르다면 자체 개발한 세 가지 소통 방식으로 적절하게 감정을 헤아려 왔다. 특히 다섯 가지 이미지로 기분을 시각화해 구분하는 마음 확인 가이드는 상당히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어서 마음 스트레칭 가이드로 긴장감 완화에 좋은 슈퍼맨 혹은 벽 밀기 자세, 숫자 세기, 심호흡 등 본격적인 개선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감정카드는 카드에 그려진 다채로운 표정 중 하나를 선택하게끔 하는 보조도구로, 내적인 혼란을 가라앉힌다. 이처럼 특성을 이해하는 환경에서 일하는 발달장애인 사원은 각자 맡은 직무에 큰 보람과 행복을 느끼고 있다.
“예를 들어 플라워 팀이 하는 업무 중에서 화환은 일정한 규칙을 훈련하면 상품 제작까지 가능해요. 반면 꽃다발은 꽃 종류부터 상당히 많은 데다 색상 조합까지 신경 써야 하는 영역이기에 한계가 있다고 여겼지요. 그런데 전문 플로리스트와 계속해서 같이 작업하면서 즐겁게 기술을 내재화하다 보니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는 수준으로 발전했습니다.”
플라워 팀이 손수 만든 작품 사진을 보여주는 이진희 대표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어린다. 과연 올해 2월 한재공익재단의 한재선행상을 수상한 그를 위해 정성껏 완성했다는 꽃다발이 자못 화사하다.
함께 일하는 세상은
기다려주는 사회에서 시작된다
마음을 확인하는 감정카드
‘각자의 속도’를 존중하는 사내 문화 정착
거듭 강조했듯 베어베터는 모든 구성원이 과업을 제때 해낼 수 있도록 독려하는 동시에, 각자가 해낼 수 있는 속도를 존중한다. 2021년, 창립 10주년을 앞두고 ‘자기만의 속도로 만든다’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선보였다. 이전에는 사원이 어디 가서 실수할 수 있기에 양해를 구하고자 했다면, 지금은 조금 느릴지라도 품질은 자부할 수 있다는 확신이 먼저 든다고 답한 이진희 대표의 얼굴이 밝다.
“2024년 6월에 서울 성수동에서 ‘베베씨의 베이커리’라고 해서 우리 제과팀 중심으로 쿠키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체험형 공간을 팝업으로 진행한 적이 있어요. 당시 사원마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쓰도록 했는데 ‘당신의 속도는?’이라는 질문에 한 직원이 ‘4G’라고 답했더라고요. 즉 자기 속도를 이동통신 기술에 비유했는데 사실 다들 5G를 쓰는 세상이잖아요. 그 가운데 혼자 4G라고 당당히 표현하면서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현해 재미있고 기억에 오래 남더군요.”
회사 설립 취지이자 미션인 ‘발달장애인이 일하는 사회’는 베어베터가 이루고자 하는 공고한 목표이다.
장애인 고용 기회를 넓혀 나가는 선순환
물론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희망은 있다. 창업 초창기에 초점을 맞춘 발달장애인 고용은 베어베터의 연계고용 지원을 거쳐 널리 확장하는 중이다.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제28조에 따르면 상시근로자 50명 이상 고용한 사업주는 전체 근로자의 일정 비율을 장애인으로 구성해야 할 의무가 있다. 또한, 해당 기준 미달 시 장애인 고용부담금 부과라는 책임이 뒤따른다. 단 장애인 표준사업장과 거래 시 고용부담금은 거래금액의 최대 50%까지 감면할 수 있다. 베어베터가 장애인 표준사업장으로서 국내 기업과 협업하며 발달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지평을 넓혀 온 배경이다.
“그러나 연계고용이 곧 해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베어베터를 발달장애인 사원 290여 명과 같이 잘 이끌어왔듯, 다른 곳 또한 여건을 갖춘다면 장애인 고용의 기회를 활짝 열 수 있어요.”
이진희 대표는 창업 이전에 몸담았던 N사를 필두로 많은 기업에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을 설득해 나갔다. 초창기엔 베어베터 사원을 적잖게 이직시키기도 했다. 직장 경험이 있는 직원이라면 긍정적인 경험을 심어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 결과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인 희망별숲은 발달장애인을 400명 가까이 고용했다. 회사가 100% 출자해 설립했으며 여기서 제조한 제과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과 화성시, 그리고 평택시 사업장 사내 식당에 공급한다. 학교법인 이화학당이 설립한 이수매니지먼트의 활약 또한 인상적이다. 발달장애인 100여 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목동병원에선 휠체어 수거와 소독, 검체 운반, 주사실 지원 등을 너끈히 해내며 호평받고 있다.
수도권 내 대기업에서 일자리를 확대해 온 베어베터의 다음 계획은 지역 간 고용 격차 축소다. 지분투자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인 브라보비버 지점을 2022년 5월 대구에 처음 세운 데 이어 인천시, 경기도, 부산시 등 전국으로 차례대로 출범해 나가고 있는 이유이다.
“장애인 고용은 단순한 복지 이상의 시너지가 있어요. 인식 개선은 물론 모든 이가 어울려 일하는 사회를 형성하며 더 거대한 선순환을 발휘하죠. 베어베터, 그리고 브라보비버가 이뤄 나갈 결실을 관심 있게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