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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중장년’ 우수사례
한순간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이건주 소방안전관리자

정년퇴직 이후, 이건주 씨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새벽 시간을 모아 자격증을 준비하고, 새로운 일을 배우며 두 번째 인생을 차근차근 만들어가고 있다. 중장년내일센터와 함께 설계하고, 다시 내디딘 걸음은 누군가에게는 이정표가 되고 있다.

글. 차유미  사진. 오충근

경력의 끝에서 다시 시작하다

한 오피스텔 방재실. 여러 대의 모니터가 켜진 작은 공간에서 이건주 씨의 하루가 시작된다. 그는 이곳에서 시설을 점검하고 위험 요소를 살피며 건물의 안전을 책임지는 소방안전관리자로 근무한다.

은퇴 전, 건설과 에너지 기업에서 30년 넘게 경영관리 업무를 맡았다. 기획과 재무, 회계와 법무, 해외 영업까지 기업의 여러 영역을 경험하며 긴 직장 생활을 보냈다. 정년퇴직은 예정된 일이었지만, 이후의 삶은 막연했다. 그래도 오랜 경력이 있으니 다시 일자리를 찾는 것쯤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력서를 수십 번 보내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때 그는 비로소 알게 됐다. 자신이 익숙했던 직장의 세계와 퇴직 이후의 노동시장은 완전히 다른 곳이라는 사실을. 많은 퇴직자가 그렇듯, 그 역시 처음에는 경력에 기대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새로운 길을 찾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을.

현실적 목표를 다시 세우다

이건주 씨가 방향을 바꾸게 된 계기는 중장년내일센터에서 받은 교육과 상담이었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참여하게 된 프로그램이었지만, 그 시간은 단순한 구직 활동을 넘어 삶을 다시 설계하는 과정이 됐다. 그는 그곳에서 현실적인 선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시설관리 분야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사무직으로 살아온 자신에게는 낯선 분야였다. 기술 자격증도, 관련 경험도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다른 사람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기술 자격증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시험을 준비하고 자격증을 따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가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비교적 쉬운 단계부터 시작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1급 자격증에 도전했다. 특별한 확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시작할 때는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소방안전관리자 3급을 준비하려는 저에게 상담사님은 바로 1급을 하라는 조언을 해주시기도 했는데, 그렇게 자신감과 힘을 얻었기에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공부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한번 시작한 일은 끝을 보는 성격이었다. 결국 소방안전관리자 1급과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새로운 일자리로 이어졌다. 분당구의 한 오피스텔 관리사무소에서 그를 채용했다. 경력이 없는 분야였지만, 오히려 그 점이 부담되지 않았다. 새로운 일을 배우는 과정 자체가 또 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시간은 같다!?

지금 이건주 씨의 하루는 단순하지만 규칙적이다. 새벽에 일어나 공부를 하고, 출근해 시설을 점검하고, 퇴근 후에는 운동을 한다. 그리고 다시 책을 펼친다. 여전히 소방설비와 전기 관련 새로운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은 묻는다. 왜 아직 그렇게 공부하느냐고. 그는 웃으며 답한다. 퇴직 이후에는 시간이 많아지는데,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삶을 결정한다고.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아깝다고. 그래서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시간을 자신의 시간으로 만든다. 아침 일찍 카페에 앉아 공부하거나 하루를 정리한다. 이 시간은 그에게 회복의 시간인 셈이다. 그렇게 하루하루의 계획을 목표 목록으로 만들고 하나씩 실현해 가고 있다.

현재 소방설비기사 필기 시험은 이미 합격했고, 4월 말 실기 시험을 앞두고 있다. 그다음 목표는 전기산업기사, 소방설비기계기사다. 책은 이미 사뒀다.

“책을 사놓으면 미안하잖아요. 언젠가는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하하).”

일터에서도 그는 같은 기준으로 움직인다. 시설을 점검하다 보면 청소나 정리 같은 일도 자연스럽게 생긴다. 누군가의 일이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해서 궂은일을 망설이지 않는다. 먼지를 치우는 것도 화재 예방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은 위험을 줄이는 것 역시 소방안전관리자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남을 돕는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 어떤 일이든 훨씬 자연스러워진다.

그에게서 삶의 태도를 배운다

이건주 씨는 자신이 밟아온 길이 중장년 재취업의 ‘성공 공식’이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퇴직 이후의 삶을 어떻게 설계하고 있는가”, “수십 년의 경력이 한순간에 쓸모를 잃는 구조에 대해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의 답은 단순했다. 방향을 바꾸고,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하루를 작은 단위로 채워가는 것. 거창한 해법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이었다.

“경력이 없다고 희망을 버리지 마시고, 끝까지 도전해 보십시오. 포기와 좌절은 접어두시고 반드시 재취업에 성공하겠다고 다짐하십시오.”

이 말의 무게는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실제로 수십 번 거절당해 봤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퇴직 이후 가장 크게 겪은 어려움은 ‘일자리가 아니라 자존감’이었다는 말처럼, 오랫동안 익숙했던 자리와 역할이 사라지면 자신이 작아진 듯한 느낌이 들 수 있다.

그래서 이건주 씨는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공부를 하고, 몸을 움직이고, 작은 습관을 만들어 하루를 채워간다. 지금 그는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 집과 가까운 일터에서 일하며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자격증 공부를 계속할 생각이다. 더 배우고, 더 익히고, 언젠가는 그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끊임없이 자신을 다독이고 세우는 그에게서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배운다.

하루를 작은 단위로 쪼개어 온전히
살아낸다는 것, 그 단순하고도 깊은 태도가
말없는 가르침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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