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일여행

경계를 지우는 이국적인 풍경들

평택

낯선 나라로 떠나야만 새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평택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익숙한 도시의 표정 사이로 문득 다른 나라에 와 있는 듯한 장면이 고개를 든다. 시장의 작은 가게에서, 도심 한가운데 펼쳐진 정원과 캠핑장 사이에서, 그리고 항만과 로데오거리로 이어지는 풍경 속에서다. 평택은 멀리 가지 않아도 일상과 여행의 감각이 나란히 놓이는 도시다.

글. 송송이  사진. 오충근

문을 열면 나오는 낯선 나라, 국제중앙시장

국제중앙시장의 매력은 평범함 뒤에 숨어 있다는 데 있다. 겉모습만 보면 여느 재래시장의 가게와 다를 바 없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마치 외국의 작은 상점에 들어선 듯한 공기가 훅 끼쳐온다. 1958년 미군 기지가 들어서면서 부대 앞으로 상인들이 모여들며 형성된 이 시장은, 오산 공군기지 정문 맞은편의 신장쇼핑몰 거리와 중앙시장을 아우르며 ‘경기도의 이태원’이라 불릴 만큼 독특한 정체성을 쌓아왔다. 멕시코, 브라질, 태국, 일본 음식점이 나란히 늘어선 골목과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재료로 끓여낸 부대찌개, 주말이면 열리는 나이트마켓까지, 다양한 언어와 냄새가 뒤섞이며 시장 전체를 하나의 여행지처럼 만든다. 평범해 보이던 간판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펼쳐지는 이 낙차야말로 이 시장만의 진짜 매력이다. 시장 한쪽에는 송탄역에서 미군부대 안까지 물자를 실어 나르던 옛 철길이 약 300m 이어지는데, 기차가 다니지 않는 지금은 골목의 보행로이자 벽화 갤러리로 남았다. 담장을 따라 그려진 그림들은 즉흥적인 낙서가 아니라 ‘함께 걷자, 철길 로드’라는 주제로 인근 대학생들이 ‘열차’와‘글로벌’을 콘셉트로 삼아 완성한 작품들로, 옛 수송로의 흔적 위에 세계 각지의 이미지를 겹쳐놓아 걷는 내내 낯선 나라를 통과하는 듯한 착시를 안긴다.

시장의 문 하나를 열고 들어서는
순간에도 정원과 캠핑장 사이를 걷는
오후에도 평택은 슬며시
다른 나라의 공기를 건넨다

국제중앙시장 벽화거리

도심 한가운데의 쉼터, 소풍정원과 캠핑장

소풍정원과 캠핑장은 국제중앙시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한 번의 발걸음으로 두 가지 여유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공간이다. 고덕면 궁리, 진위천변의 방치된 하천 부지에 2013년 조성된 소풍정원은 ‘미소바람이 머무는 정원’이라는 이름처럼 자연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을 지향한다. 2018년에는 이화의 정원, 무지개 정원, 빛의 정원, 지지배배 정원이라는 네 개의 테마 섬을 새로 조성해 색다른 경관을 더했고, 수변데크를 따라 솟대와 바람개비가 늘어선 산책로는 밤이면 경관조명이 켜지며 낮과는 또 다른 야경을 만든다. 정원 바로 옆으로 이어지는 캠핑장에는 물놀이터와 모래놀이터, 편백힐링센터가 자리해 있어, 멀리 떠나지 않아도 도심 속에서 텐트를 치고 쉬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낸다. 평일 낮에는 산책 나온 인근 주민들이, 주말이면 텐트를 펴고 하루를 묵어가는 가족들이 같은 공간을 나눠 쓰며 도시와 휴가지의 경계를 지운다. 도시 한복판에서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고, 그 낯섦이 일상과 여행 사이의 벽을 슬며시 허문다.

소풍정원

소풍정원

한 화면 안의 두 세계, 평택항과 마린센터

평택항은 전혀 다른 결의 얼굴을 하나 더 보여준다. 동북아 물류의 거점답게 항만은 늘 분주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옮기면 바다 건너로 조용한 농촌 풍경이 함께 눈에 들어온다. 천혜의 입지와 광활한 배후지를 갖춘 이곳은 국가 차원의 투자와 지방정부, 민간의 참여가 겹치며 생산과 유통, 상업, 인적 교류 기능을 두루 갖춘 초대형 종합항만으로 몸집을 키워왔다. 이 대비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 평택항 마린센터 전망대다. 노을이 서해대교 일대를 붉게 물들이는 시간, 국적선과 자동차 선적 부두가 끝없이 이어진 산업항의 모습이 한눈에 잡히고, 그 너머로는 잔잔한 들녘과 마을이 펼쳐진다. 한쪽에서는 크레인과 컨테이너가 쉼 없이 움직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계절 따라 빛깔이 바뀌는 논밭이 천천히 흘러간다. 마린센터 안에는 항만의 여건과 개발 계획, 미래 비전을 소개하는 홍보관도 함께 있어,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이 항만의 어제와 오늘을 한자리에서 훑어볼 수 있다. 속도가 전혀 다른 두 장면이 하나의 시야 안에 나란히 놓인다는 것, 그것이 평택항만이 지닌 가장 인상적인 특징이다. 그래서 이 전망대에 서면 평택이라는 도시의 여러 겹 얼굴을 가장 또렷하게 마주하게 된다.

평택항 마린센터

국경 없는 거리, 안정리 로데오거리

안정리 로데오거리는 캠프 험프리스 미군기지 정문과 맞닿아 있다. 주한미군사령부가 용산에서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 미군과 군무원, 그 가족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고, 거리의 표정도 함께 바뀌었다. ‘제2의 이태원’이라 불릴 만큼 상권이 커지면서 서양식 펍, 바비큐 전문점, 텍스멕스 식당이 줄지어 들어섰다. 낮에는 한산하고 여유로운 이국의 골목 같다가도, 해가 지면 네온사인이 켜지고 낯선 언어와 음악이 거리를 채운다. 최근에는 관광정보 키오스크까지 설치돼 평택시민과 외국인 방문객 모두를 위한 거리로 자리를 넓혀가는 중이다. 로데오거리 입구에서 걸어서 2분 거리에는 안정리예술인광장이 자리한다. 이곳은 동네 사람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낡은 건물들을 헐지 않고 고쳐 만든 복합문화공간으로 2020년 10월 문을 열었다. 야외공연장을 중심으로 완만한 경사를 준 광장 바닥은 앉거나 누워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여유로운 공간감을 만들어내고, 순수예술센터와 생활예술센터, 공연예술센터, 창작작업소 등 10개 동에서는 시민과 미군, 예술가가 함께 어울리는 전시와 공연, 축제가 주말마다 펼쳐진다. 상권의 활기와 예술의 여백이 한 골목 안에서 나란히 숨 쉬는 셈이다. 거대한 기지 하나가 만들어낸 이 이질적인 풍경은 평택이 품은 이국적인 장면 가운데서도 가장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안정리 로데오거리

국경을 넘지 않고도
마주치는 이국의 표정들
그 낯섦과 익숙함이
나란히 걷는
이 도시에서는
하루하루가 조금씩
다른 나라를 지나는
여행이 된다

두근두근 내일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