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온도

흔들리는 사람들 곁에,
최소한의 안전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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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편집실

최진영의 소설 <구의 증명>에는 두 청년이 있다. ‘담’은 마트 한구석에서 고기를 썰며 하루를 벌고, ‘구’는 부모가 남긴 빚을 성인이 된 몸으로 짊어지고 열일곱 살부터 공장 일을 이어 간다. 두 사람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내지만, 갚아도 줄지 않는 빚 앞에서 숨 돌릴 틈을 얻지 못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기우’도 그 곁에 서 있다. 반지하 집에서 피자 상자를 접으며 생계를 꾸리던 기우는 우연히 시작한 과외 일이 사다리의 한 칸이 되기를 바란다. 일자리가 사다리여야 하는 세계에서, 그는 그 사다리를 잡아도 되는지 늘 조심스럽다.

드라마에 비친 청년의 모습은 더 현실적이다. <미생>의 ‘장그래’는 바둑에 청춘을 쏟았던 길을 접고, 고졸 검정고시 출신으로 종합상사에 계약직 인턴사원으로 들어와 하루하루를 버텨 낸다. 다음을 헤아리기 어려운 날들이고, 정규직 전환은 끝내 허락되지 않는다.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은 여섯 살부터 병든 할머니와 단둘이 지내며, 번 돈을 고스란히 빚 갚는 데 쓰고 닥치는 대로 일한다. 빚이 급한 그에게 회사 대표는 도청기 설치를 청하고, 생계가 눈앞에 놓인 사람에게는 거절할 여유조차 남아 있지 않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미안해요, 리키>의 ‘리키’는 택배회사에 취직했다고 기뻐하지만, 회사는 그를 ‘개인사업자’라 부른다. 그는 배달 밴 값을 스스로 마련하고 보수는 건당 받으며, 수신인이 집에 없는 일 하나에도 벌금을 문다.

이 주인공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열심히 일하지만, 노동자라는 자격을 온전히 건네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 4대보험, 노동조합 같은 우리의 노동보호는 ‘근로자’로 인정받아야 닿을 수 있다. 그사이 일의 모양은 계약직, 프리랜서, 자영업, 플랫폼으로 넓어졌지만 보호의 문은 예전 크기 그대로 남아 있다. 일하는시민연구소에 따르면, 국세청 인적용역 사업소득 3.3% 귀속납부자 기준으로 법의 보호 바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2024년 기준 약 869만 명이고, 2014년의 약 400만 명에서 십 년 새 두 배 넘게 늘었다. 같은 기간 비정규직도 612만 명에서 846만 명으로 늘었다. 그래서 흔들림은 세 지점에서 찾아온다. 다쳤을 때 기댈 보상이 없고, 일이 멈췄을 때 이어 줄 손이 없고, 부당하다고 느껴도 말을 건넬 창구가 없다. 이 흔들림은 개인의 몫이 아니다. 일의 모양이 달라진 속도를 안전망이 아직 따라잡지 못했을 뿐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사회적 안전망을 넓히려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산재보험은 보호의 범위가 넓어졌다. 2023년 7월부터 ‘전속성’ 요건이 없어져 여러 곳에 일을 하는 플랫폼 종사자와 특수고용 노동자 약 92만 5천 명이 새로 보호를 받게 되었다. 리키와 같이 배달 중에 사고를 당하더라도 일하다 생긴 일로 보상받을 길이 열린 것이다.

고용보험도 문을 열었다. 2020년 12월 노무제공자 개념을 도입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막 첫걸음을 뗀 만큼 채워 갈 몫이 크다. 2024년 기준 가입자는 79만 9천 명으로 869만 명의 10%에 이르지 못한다. 마련된 제도가 현장에 닿게 하는 일이 다음 과제다.

일터에서 목소리를 낼 통로도 생겨나고 있다. 올해 3월 시행된 개정 노동조합법은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정하는 원청도 ‘사용자’로 인정한다. 하청과 외주의 자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임금을 실제로 정하는 이와 마주 앉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국제 사회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올해 6월 제114차 총회에서 “법률상 노동자성과 무관하게 플랫폼 종사자라면 누구나 보호받아야 한다”는 세계 기준을 채택했다. 고용 형태와 상관없이 모든 플랫폼 종사자를 아우르는 종합법은 앞으로 함께 만들어 갈 일이다.

안전망은 거창한 제도가 아니다. 일하다 다치면 보상받고, 일이 끊기면 다시 일어설 수 있고, 부당하다고 느끼면 말할 수 있는 것. 이 세 가지가 매일의 일터에 깔려 있으면 된다. 최소한의 안전망은 떨어지는 사람을 받아 내는 그물이기 전에, 걱정 없이 다시 뛰게 하는 발판이다.

담이 고기를 썰면서도 내일을 그려 볼 수 있기를, 기우가 사다리를 놓쳐도 다시 손을 뻗을 수 있기를, 이지안이 도청기를 들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기를. 소설 속 주인공들이 우리 사회에 건네는 바람은 크지 않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최소한의 안전망 위에 서는 것. 그 바람에 맞춰 제도가 하나씩 마련되고, 일터에 단단히 자리 잡기를 바라본다.

일의 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