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인터뷰
‘행운’보다 ‘행복’,
일이 지켜내는 일상 예찬
배우 이준혁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다. 그리고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다. 프랑스의 장수 나폴레옹이 전투 중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하고 고개를 숙인 순간 총탄을 피했다는 일화 때문에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그 ‘행운’을 찾기 위해 우리는 지천으로 널린 ‘행복’을 외면하는지도 모른다. 로또 1등에 당첨되고도 출근하는 직장인을 연기한 배우 이준혁에게 행복을 물었다.
글. 하경헌 경향신문 기자
사진. 에이스팩토리, 티빙
로또 1등 당첨되면 출근하시겠습니까
최근 배우 이준혁이 출연한 티빙의 드라마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는 일상에 솟아난 ‘행운’ 그리고 그 때문에 미처 몰랐던 ‘행복’을 찾는 이야기다. 이준혁은 극 중 홍성인터내셔널의 팀장 공은태 역을 맡았다. 성실한 태도로 팀장까지 달았지만, 타성이 찾아오고 이와 함께 기막힌 행운인 로또 1등 당첨도 찾아온다.
모두가 평생의 행운으로 여기는 로또 1등을 거머쥔 사나이. 하지만 그는 사직서 대신 로또 1등 종이를 품고 출근을 택한다. ‘살기 위해 일을 하는’ 상황이 ‘일하기 위해 사는’ 상황이 된 것이다. 누구나 말이 안 된다고 하지만, 또 한 번쯤은 꿈꿔보는 상황. 이준혁이 이 공은태를 궁금해하게 된 것도 이러한 아이러니한 설정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했던 작품들은 배역 각각의 역할이 많았어요. 이번 작품은 처음으로 주인공 느낌이 났어요. 그리고 평범한 인물이었기에 더 편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솔직히 사람답지 않은 인물을 너무 많이 했어요. 그런 부분이 편하게 다가왔네요.”
당첨액 5,000원, 이준혁도 로또를 한다
드라마 촬영을 시작하고 그도 로또를 사본 적이 있는지 질문이 이어졌다. 물론 그는 평소의 반듯한 이미지답게 별로 행운에 기대는 타입은 아니었다. 하지만 제목도 ‘로또’가 들어가는지라 캐릭터를 준비하며 매주 로또를 사보려 했다. 당첨액은 5,000원이 최고였다. 심지어 정성껏 찍은 회차는 그마저도 외면했다.
“저희가 하는 일이 로또처럼 우연에 기대는 게 아닌가 해요. 물론 제게는 그 정도의 행운이 온 적은 없었고 다음의 희망을 품는 정도였죠. 어쨌든 힘이 들어도 지금까지 일하고 있고, 이런 지점이 공은태와 닮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번 작품에서 평범한 인물을 하면서, 다른 때보다 친구들에게 ‘내 자신의 일이 멋져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은 것 같아요.”
평범함 속의 비범함, 힘을 빼고 접근한 작품의 힘. 이런 아이러니한 명제들이 작품의 인기를 끌어올렸다.
행운이라는 시선,
20년 동안 감춰진 일상
그는 갑작스러운 행운보다는 평소의 행복에서 얻는 가치를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대중의 시선은 그가 가진 행운에 대해 집중했다. 하나는 평범한 직장인 역할을 해야 하는 배우치고는 조각 같은 외모, 다른 하나는 로또 당첨의 행운을 애써 가라앉히려고 하는 극의 설정이었다.
“지금까지 한 작품이 보여준 이미지와 팀워크가 제 모습을 만든 것 같습니다. 제가 사실 20년 동안 그렇게 뭐가 없었습니다. 시작부터 얼굴로 떼돈을 벌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요.(웃음) 은태보다 더 고생했다고 하면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외모는 시대의 유행인 것 같아요. 외모에 대한 칭찬도 감사하지만, 유행이 지나면 나중에는 별로라고 할 수도 있는 거죠.”
오히려 살이 많이 붙는 체질이기에 남들보다는 적게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루 식단도 설명했다. 단백질 가루 한 번, 빵 한 조각, 올리브오일, 아보카도, 채소 등을 섞어 먹는다. 모두의 최애인 라면도 끊었고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다.
“로또 당첨이라는 설정도 그렇습니다. 배우에 빗대자면 특정 작품의 흥행이 배우생활 전반의 경제적 안정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에요. 한 작품이 잘됐다고, 그 작품으로 평생을 먹고살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한 작품이 흥행을 한다고 해서 일을 그만둘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여전히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우리가 모두 그렇듯이요.”
알잖아요,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2007년 <드라마시티>로 데뷔한 그는 터프가이와 악역을 오가며 긴 무명에 가까운 시간을 지났다. 2017년 <비밀의 숲>의 검사 서동재로 새 길이 열렸고, <나의 완벽한 비서>를 거쳐 올해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천만 관객을 만났다. 노력이 성과로 돌아오는 순간도 있었다.
“제 경력이 물리적으로는 꽤 긴 시간입니다. 그때 집에 가면 또 영화를 봤어요. 지금까지 몇천 편을 본 것 같습니다. 돌아보니 그것밖에 없더라고요. 거의 20년의 세월을 일하고 영화를 본 것이 다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를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저보다 촬영현장을 더 잘 아는 사람이 있으면 질투가 나기도 하고요. 결국 더 잘하고 싶은 원동력이 됩니다.”
마치 로또를 매주 사듯 행운을 기다리는 태도는 삶의 활력이 된다. 그렇지만 기다림 속에서 생기는 만족감은 결과가 생기지 않으면 허망할 뿐이다. 하지만 스스로 부족함을 알고 이를 채우는 행위는 내면의 행복을 채운다. 애초부터 이준혁은 행운을 기다리지 않았다. 일상의 행복을 채워나갈 뿐이었다. 그런 맥락으로 그에게 로또로 대표되는 행운의 의미도 다르지 않았다.
“행운에는 고통도 따라요. 어떤 역할을 할 때 제가 행운이 있더라도 그만큼의 실력이 없을 때도 있고, 반대로 함께하는 누군가 준비되지 않았을 때도 있죠. 저는 행운이라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그걸 ‘이 게임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정도로만 생각하려 합니다. 게임을 잘하시는 페이커 씨도, 몇천억을 벌었다는 배우 톰 크루즈도 결국 도전을 계속하잖아요.”
<월간 내일>은 땀의 시간을 지나는 사람들이 잠깐 숨을 고르는 자리다. 행운을 곁눈질하면서도 행복을 놓지 않는 이들이 이 페이지에 모인다. 이준혁도 그 자리에 앉은 사람처럼 “독자분들, 이렇게 만나 뵙게 돼 기쁩니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드라마 마지막 회, 공은태는 동료 팀장에게 이렇게 말해요. ‘우리는 알잖아요. 우리가 어떻게 했는지, 뭘 했는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라고요. 배우라는 직업도 고난이 많지만 결국 멋져 보이게 되죠. 직장 생활도 얼마나 멋있는 일인지 보여준 작품을 찍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시는 일이 사회에 기여하고 굉장히 멋진 일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행운은 오다 말다 해도,
출근길은 매일 우리 몫입니다.
매일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