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의 열정지수
모두가 함께 고른 색,
공장의 안전 지도가 되다
CJ제일제당(주) 부산공장
좋은 제품을 만드는 일만큼 그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시다와 햇반으로 국내 식문화를 이끌어 온 CJ제일제당(주) 부산공장은 이 믿음을 색으로 풀어냈다. 식품업계 최초로 컬러 유니버설 디자인(CUD)을 작업장에 들인 것이다.
글.
차은서
사진.
오충근
작업환경이 먼저 알리는 안전의 힘
CJ제일제당 부산공장은 1953년 부산 서면에서 국내 최초로 설탕 생산을 시작한 제일제당의 역사를 잇는 사업장이다. 약 2만 5천 평 부지에서 임직원과 협력사 구성원 약 900명이 함께 일하며, 국내 식문화를 이끄는 동시에 수출 전초기지로 역할을 넓히고 있다. 부산공장은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만큼 구성원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는 환경을 중요하게 여긴다. 안전을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두고, 잠재 위험을 미리 찾아 개선하는 예방 중심의 안전관리 체계를 갖춰 왔다.
부산공장에는 하루 평균 약 150대의 화물차가 드나들고 64대의 지게차가 오간다. 다양한 차량과 보행자가 같은 공간을 이동하는 만큼 물동량이 늘어날수록 이동 동선을 명확하게 나누는 일이 중요한 과제가 됐다.
“기존에는 안전표지판이나 교육을 통해 근로자에게 주의를 당부하는 방식이 중심이었다면, 저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위험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환경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번 컬러 유니버설 디자인(이하 CUD)1 도입은 단순히 공장에 색을 입히는 환경미화 활동이 아닙니다. 최소한의 안전기준을 넘어, 작업환경이 먼저 위험을 알려주는 예방 중심의 안전관리 혁신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라고 장기태 공장장이 설명했다.
부산공장은 2025년 9월 KCC와 업무협약을 맺고, 사업장 특성에 맞는 CUD를 표준 매뉴얼로 만들어 적용했다. 부산공장은 이를 국내 식품업계 최초로 작업장에 적용했다.
색과 픽토그램으로 그린 안전 지도
아이디어는 고속도로에서 얻었다. 복잡한 분기점에서 운전자가 진행 방향을 직관적으로 알아보도록 돕는 색상 유도선의 원리를 산업현장에 옮겨 온 것이다. 부산공장과 KCC는 차량 이동 동선과 보행환경을 분석해 중앙교차로와 보행 유도선, 횡단보도, 비상대피로 등 주요 동선에 이동 주체별 색을 입혔다.
보행로에는 파란색 계열을 적용하고 바닥에 발자국 픽토그램을 그려 넣었다. 지게차 이동구역에는 주황색 계열의 지게차 픽토그램을, 화물차 이동 구역에는 붉은색 계열의 유도선을 적용했다. 보행자와 지게차 동선이 교차하는 구간에는 ‘지게차 주의’, ‘일단멈춤’ 안내판을 세우고 바닥에 주의 인포그래픽을 더했다. 색상과 함께 픽토그램과 경고 패턴을 적용해 안전 정보의 전달력도 높였다.
화재·폭발 위험이 있는 공정안전관리(이하 PSM)2 대상 공정에는 축광도료 ‘루미세이프’로 피난·대피 경로를 표시했다. 평소 빛을 흡수했다가 어두운 환경에서 빛을 내는 도료로, 정전이나 화재, 침수 상황에서도 대피 방향을 쉽게 찾도록 돕는다. 일반 보행구역에는 미끄럼방지 조치를 더했다.
디자인 선정은 현장 근로자의 몫이었다. 부산공장은 안전디자인 개선안을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정식 안건으로 상정하고, 노동자 의견을 수렴한 뒤 투표로 적용할 디자인을 정했다.
“안전시설은 단순히 보기 좋은 디자인보다 현장의 작업 특성에 적합하고, 근로자들이 쉽게 이해하며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동자가 직접 선정한 디자인은 현장에 대한 공감대와 수용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안전환경 개선을 구성원 모두의 과제로 인식하는 계기가 됩니다.”
새로운 환경은 기존 노동자는 물론 신규 입사자와 외부 방문자, 외국인 근로자도 위험구역과 이동 경로를 한눈에 알아보도록 돕는다. 부산공장은 현장 운영 결과와 근로자 의견을 꾸준히 확인하며 개선 효과를 검증해 나갈 계획이다.
1. 컬러 유니버설 디자인(CUD, Color Universal Design): 색각 특성과 관계없이 누구나 정보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색을 설계하는 디자인 방식. 구별하기 쉬운 색 조합을 고르고, 색에만 의존하지 않고 모양·무늬·글자 등을 함께 써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다.
2. 공정안전관리(PSM, Process Safety Management): 위험물질을 다루는 사업장에서 화재·폭발·누출 같은 중대산업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공정 설계부터 운전, 정비, 비상 대응까지 안전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제도.
공장 담장을 넘어 번지는 안전문화
부산공장은 공간 디자인에 스마트 안전기술을 더해 예방체계를 촘촘히 다지고 있다. AI 기반 위험 감지기술과 스마트 안전모를 도입했고, 1인 작업공정 스마트 안전모 시범운영, 냉장·냉동창고 출입자 스마트 에어백 착용, 드론 안전점검 시범운영 등 새로운 기술의 적용도 검토하고 있다.
“CUD가 근로자의 안전한 행동을 유도하는 시각적 예방수단이라면, 스마트 안전기술은 현장의 위험을 보다 신속하게 인지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보완수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정안전관리 역량도 꾸준히 키웠다. 2022년 PSM 이행상태 평가에서 S등급을 받은 뒤 개선을 이어가 올해 7월 최고 등급인 P등급을 달성했다. 전문기관 컨설팅과 전문화 교육, 모의 면담과 자체 점검으로 제도가 현장에서 작동하도록 했고, 동남권 PSM 협의회 활동과 우수사업장 벤치마킹으로 다른 사업장의 사례를 운영에 반영했다. 정압기 교체와 내화도료 강화 등 설비 투자도 함께 추진했다.
안전문화는 공장 밖으로도 이어진다. 2024년부터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의 안전문화 확산 정책과 연계해 매년 햇반 20만 개 이상의 포장에 안전 메시지를 담고, 화재취약개소 지원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2021년 문을 연 약 330㎡ 규모의 안전체험관에서는 지게차 충돌, 끼임 등 산업현장의 주요 위험요인을 직접 체험할 수 있으며, 2026년 9월 기준 누적 3,634명이 교육을 수료했다. 부산공장은 KCC디자인센터와 함께 CUD 디자인 요소를 표준화해 다른 제조사업장과 물류센터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안전디자인 매뉴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모든 구성원이 아침에 출근한 건강한 모습 그대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일터, 안전이 특별한 활동이 아니라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사업장, 그것이 CJ제일제당 부산공장이 궁극적으로 만들어 가고자 하는 안전한 일터의 모습입니다.”
바닥에 그은 색 한 줄에서 시작된 변화는 부산공장의 현장과 구성원의 일상까지 바꾸는 중이다. 이제 이곳에는 누구나 위험을 먼저 알아보고 안전한 길을 스스로 고르는 일터가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안전이 특별한 활동이 아니라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사업장,
바닥에 그은 색 한 줄에서 시작된 변화는
현장과 구성원의 일상까지 바꾸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