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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은 교묘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2024 ‘올해의 근로감독관’
인천북부노동지청 박태용 근로감독관

불 꺼진 사업장, 흔적 없는 사장, 밀린 임금, 억울한 근로자.
이 네 가지가 만나면 시작되는 이야기가 있다. 누군가는 포기할 수도 있는 이 사건들에 박태용 근로감독관은 끝까지 파고들었다.
“이 직업이 정말 좋습니다”라는 그의 말속에는 무수한 밤과 분투의 기록이 담겨 있다.

글. 차유미 사진. 오충근

평범했던 공시생, 약자의 손을 잡다

현재 박태용 근로감독관은 인천북부노동지청 근로개선지도1과 수석수사팀에서 임금체불,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사건을 다루고 있다. 제보 사건과 특이 민원 대응도 수석수사팀의 업무이다. 그는 바쁜 업무 속에서도 지청 내 직장협의회 회장, 스포츠 동호회 회장, 학습조직 리더 등 조직의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2019년 근로감독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원래는 행정직 공무원을 준비하던 평범한 ‘공시생’이었지만, 막연했던 미래 앞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근로감독관이라는 직업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2017년, 증원 소식과 함께였다. 그는 우연히 근로감독관 인터뷰 기사를 접했다. “일은 고되지만, 보람이 크다”라는 내용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학창 시절부터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부당한 일을 겪거나 목격했던 경험들, 그리고 억울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내면의 목소리가 그를 이끌었다. 그렇게 그의 목표는 ‘근로감독관’으로 선명해졌고, 그 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마주한 현실은 예상보다 훨씬 무거웠다. 임금체불,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사건···. 사건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삶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반드시 개입해야 한다’라는 책임감은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2024년, 선망했던 ‘올해의 근로감독관상’을 직접 받게 되었을 때, 그의 헌신은 큰 영광으로 돌아왔다.

악의적 체불, 외면할 수 없는 현실

그의 기억에 가장 깊이 남은 사건은 대지급금 부정수급 사례다. 간이대지급금 제도를 악용해 국가로부터 약 2억 9천만 원을 가로챈 청소업체 대표를 구속했던 일이다. ‘청소 현장의 임금 체불 정황이 이상하리만치 규칙적’이라는 작은 의심에서 시작된 직권 조사는 집요하게 이어졌다. 통신 영장을 통한 통화 기지국 분석, 계좌 압수 영장을 통한 자금의 흐름 추적까지···.

사안의 중대성과 악의성을 밝혀내기 위한 그의 수사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대지급금은 어려운 시기, 근로자의 생계를 지탱하는 마지막 안전망이다. 그런데 이를 사업 수익의 극대화 수단으로 여기는 모습을 보며 그는 깊은 실망과 함께 마음이 무거워졌다. “체불을 전략처럼 쓰는 인식은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는 그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실려 있었다.

또 다른 사건에서는 임금, 퇴직금 등 약 6,200만 원을 체불하고 잠적한 사업주를 직접 잠복하여 검거하기도 했다. “노동법이 뭐냐, 벌금 한 번 내면 그만 아니냐”며 출석조차 거부하던 사업주. 당시 그의 핸드폰에 녹음된 대화는 이후법정에서 중요한 증거가 되었다. 사업주의 치밀한 재산 은닉, 아들 명의 계좌 사용 등 꼬리를 감추려는 시도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끝내 구속 수사를 이끌어냈다.

갈등의 현장에서, 사람의 마음을 읽다

근로감독관의 업무는 법과 원칙을 적용하는 것만큼이나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다. 상당수의 사건은 근로자와 사업주 간의 깊은 감정의 골에서 비롯된다. 서로를 향한 불신과 억울함이 뒤얽힌 현장에서, 근로감독관은 중립을 지키면서도 양측의 마음에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신뢰를 쌓아야 한다. 그는 이러한 과정이 단순한 수사라기보다는, 갈등을 조율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서로를 거짓말쟁이라 여기는 감정이 얽힌 대질 조사 현장에서, 근로감독관은 객관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신뢰를 형성해야 합니다. 근로감독관이 어느 한쪽 편이 아니라는 확신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당사자들이 자신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 판례, 지침을 상세히 설명하고, 조사에 앞서 그 이유까지 친절하게 안내한다. 물론 현장은 늘 예측 불가능하다. 대질 조사 중 민원인이 갑자기 커터 나이프를 꺼내거나, 신고인의 뒤통수를 때리는 사업주, 조사 중 주먹다짐을 하는 근로자와 사업주, 사업장 내 폭행 사건까지. 극단적인 상황들도 마주해야 했다.

“한번은 민원인이 책상에 있던 커터 나이프로 위협을 가한 적이 있었어요. 그 후 사무용품은 민원인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겼죠.” 그의 담담한 설명 뒤에는 아찔했던 순간들이 숨어 있다. 그는 이러한 긴장감 속에서도 특유의 유머로 분위기를 풀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법은 살아 움직여야 하기에

박태용 근로감독관은 악의적인 체불에는 반드시 형사 처벌과 민사 책임이 뒤따르게 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물론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불가피하게 체불이 발생한 경우도 있으며, 그런 사업주들은 대부분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도움을 구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벌금 몇 번으로 끝나고, 반복해서 책임을 회피하는 사업주에게는 단호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벌금 내면 끝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존재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그의 말에서 약자를 향한 그의 진심이 느껴진다.

그의 사무실 책상 앞에는 늘 같은 문구가 걸려 있다. ‘국가의 노동법이 아무리 선진화되어 있어도 근로감독제도가 없다면 그 법은 한낱 사문(dead letter)에 불과할 뿐이다.’ 이 글귀는 그에게 매일의 동기가 된다.

“이 글귀를 볼 때마다 제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합니다. 오늘도 누군가의 현실이 차가운 법 조항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그의 마지막 말에서, 약자의 곁을 지키는 그의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누군가의 억울함을 제가 대신
풀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근로감독관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