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25년간 직장에서 일했다. 어느덧 현업을 떠난 지 13년 차다. 직장 다니던 시절을 돌아보면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지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닌데, 그땐 왜 그리 아등바등하며 살았을까. 왜 그토록 일이 싫고 사람이 미웠을까. 왜 그렇게 남에게 잘 보이고 남을 이기려고만 했을까.’ 지금에 와선 다 부질없는 일인데 말이다. 이미 그 자리를 떠난 지금 그 시절 그 사람들이 그립다. 일은 관계다. 일한다는 건 함께한다는 뜻이고, 누군가의 삶에 함께 참여한다는 의미이다. 나는 관계 덕분에 일할 수 있었다. 관계는 세 가지를 선사한다. 도움, 배움, 이음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남의 도움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일을 통해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누군가의 삶에 보탬을 주기도 한다. 서로의 노동에 빚을 지고 사는 셈이다. 내가 먹는 밥 한 그릇과 입는 옷 한 벌, 타는 버스까지 어느 것 하나 누군가의 수고로움이 닿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고, 서로에게 배울 수밖에 없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배웠다. 그 누구도 배울 게 없는 사람은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늘 누군가가 나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고 추천하고 연결해줬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직장생활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일은 귀하고, 일하는 사람 모두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물론 아쉬움도 있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다양성과 유연성을 더 키웠을 것이다. 다양성은 나와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르기 마련이므로 그런 다름을 존중하는 것이다. 다르다고 싫어하거나 배타적으로 대하지 않고 끌어안는 것이다. 나아가 유연하게 상대에게 맞추려 노력했을 것이다. 상대가 그릇이고 나는 물이란 생각으로, 상대의 모양에 맞춰 나를 바꿔나갔을 것이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게 좋은 관계를 만드는 길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관계가 나를 도울 것이기에 그렇다.
올해로 돌아가신 지 10주기를 맞은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을 믿는다.
“타인은 나의 존재 조건이다. 남이 있어야 내가 있다. 내가 서려면 남을 먼저 세워야 한다. 남을 돕는 건 결국 나를 돕는 일이고 나의 존재 기반을 단단히 하는 일이다.” 생각할수록 맞는 말씀이다. 어떤 일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또한 남과 함께 할 때 못 할 일도 없다.
답은 언제나 사람에게 있다
겨울 찬 공기가 여전한 아침, 우리는 저마다의 일터로 향한다. 하루 대부분을 일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나 역시 글을 쓰고 강의를 한다. 일하기 싫을 때마다, 일이 힘들 때마다 나는 사람을 떠올린다. 글을 쓰는 일보다는 내 글을 읽을 사람을, 강의하는 일보다는 누군가를 생각한다. 일에서 길을 잃을수록 답은 언제나 사람에게 있다. 일하는 현장에는 사람이 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나아가는 사람이 있다. 선배에게 배우고 동료끼리 도우면서 나아가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을 믿고 생각을 바꿔보자. ‘내가 부족해서 문제야’라고 자책하는 대신 ‘누군가와 함께해서 부족함을 채울 순 없을까’라고 궁리해보자. ‘저 사람 때문에 일에 속도가 붙지 않아’라고 탓하는 대신 ‘저 사람 일에 내가 힘을 실어줄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하고 ‘그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대신 ‘그만의 사정이 있을 거야’라고 헤아려보는 건 어떨까. 이런 생각과 마음, 이해하려는 태도 하나가 일터 온도를 바꾼다. 그리고 그 온도는 결국 사람을 살리고 우리 모두를 행복의 길로 이끈다.
서로의 온기가 되어주기를
새해를 맞아 이런 다짐은 어떨까. ‘서로의 도움과 배움과 이음이 되어주자. 각자도생에서 벗어나 더불어 숲을 이루자. 자신을 조금 덜 몰아붙이고 여유를 갖고 주변을 돌아보자. 넘어진 동료를 일으키고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돕자. 함께 길을 찾고 서로에게 온기가 되어주자’고 말이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가장 훌륭한 스승이자 기댈 수 있는 언덕이다. 나는 오늘도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일터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