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의 열정지수
주 35시간, ‘사람’이 남는 선택
디지털 에이전시 앱노트의 일·생활 균형 실천 사례
“일을 줄이자”는 말은 쉽다. 그러나 실제로 근무시간을 줄이고도 조직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소프트웨어 개발·디지털 전환
전문기업 ‘앱노트’는 이 어려운 선택을 현실로 만들었다.
이 회사는 주 35시간 근무제를 채택하며, 사람을 소모하지 않는 성장 방식을 실험해 왔다. 그 결과는 숫자보다 먼저, 사람의 표정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글. 차유미
사진. 오충근
빨리 지치면, 오래 갈 수 없다
회사가 성장하면 일이 늘어난다. 일의 양이 늘면 사람의 체력과 집중력은 먼저 한계에 닿는다. 많은 조직이 이 지점에서 속도를 더 낸다. 앱노트는 다른 선택을 했다. 성과를 내는 속도가 아니라, 사람이 오래 일할 수 있는 속도를 기준으로 조직을 다시 설계했다. 디지털 전환 전문기업 앱노트가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것은 2016년이다.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 제도는 유지되고 있다. 단기간의 실험이나 이벤트가 아니라, 회사 운영의 기본값이 됐다. 지금도 업계에서 쉽게 찾기 어려운 사례다.
앱노트가 일·생활 균형을 고민하기 시작한 시점은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던 때였다. 프로젝트는 늘었고, 외형적 성과도 분명했다. 동시에 구성원들의 피로도 역시 누적되고 있었다. 장우용 대표는 이 흐름을 단순한 성장통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 대표는 “회사가 커질수록 사람이 더 빨리 지쳐 나간다면, 그 성장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생각을 자주 공유해왔다. 그의 문제의식은 분명했다. 일·생활 균형은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지속 가능성에 관한 질문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제도가 아니라 기준이었다. 사람이 이 회사에 오래 남아 일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시간이 의미 있는가. 이 질문을 중심에 두고 근무시간, 업무수행 방식, 관리 구조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기 시작했다.
성과는 사람을 소모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오래 일할 수 있을 때 지속됩니다.
회사의 성장 역시 속도가 아니라
우리가 일할 수 있는 리듬에서 완성됩니다.
시간을 줄이자, 일의 밀도가 달라졌다
주 35시간 근무제는 앱노트에서 변화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회사 안에서는 이 제도를 ‘시간을 덜 쓰는 방식’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같은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근무시간이 정해지자, 자연스럽게 질문이 바뀌었다. 무엇이 정말 중요한 일인가, 지금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무엇인가. 즉흥적인 요청과 불필요한 반복 작업은 줄었고, 사전에 공유하고 조율하는 방식이 늘어났다.
여기에 월 2회 재택근무, 집중근무 시간 운영, 퇴근 이후 업무 알림 제한이 더해졌다. 각각의 제도는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현장에서는 하나의 흐름으로 작동한다. 시간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 일의 경계를 분명히 하기 위한 장치들이다. 오정엽 부대표는 이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제도를 많이 만드는 게 목표는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지켜질 수 있어야 했고, 직원들이 ‘이건 눈치 보지 않고 써도 된다’고 느껴야 했죠.”
그는 “예전에는 사람이 버티도록 관리했다면, 지금은 사람이 지치지 않도록 조율하는 관리가 더 중요해졌다”고 덧붙였다.
잠깐 멈출 수 있는 공간의 의미
앱노트 사무실 한쪽에는 예약제로 운영되는 사내 힐링카페가 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예약 경쟁이 치열해 ‘힐켓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 공간은 단순한 휴식 시설이라기보다, 짧은 시간이라도 업무의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마련된 장치다.
회사는 이 공간을 통해 ‘쉬어도 된다’는 메시지를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구조로 보여준다. 바쁜 시기일수록 잠깐 멈출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힐링카페는 일·생활 균형 정책의 상징적인 사례지만, 회사 안에서는 특별한 제도로 강조되지 않는다. 다른 제도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쓰이는 일상의 일부에 가깝다.
말을 줄이고, 맥락을 공유하다
앱노트의 소통 방식 역시 같은 방향을 따른다. 불필요한 회의는 줄이되, 필요한 정보는 충분히 공유한다. 그 중심에 있는 채널이 ‘월간 앱노트’다. 회사의 주요 결정 사항,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방향, 조직이 고민하고 있는 이슈들이 정리돼 매달 공유된다.
일회성 공지가 아니라 정기적인 공유라는 점이 중요하다. 구성원들은 회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를 사전에 이해한 상태에서 일한다.
전 직원이 참여하는 타운홀 미팅 역시 같은 맥락이다. 직급과 관계없이 질문하고 의견을 나누는 자리다. 오정엽 부대표는 “회의를 줄이는 대신, 꼭 필요한 소통은 더 분명하게 하자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구조는 조직을 느슨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결정의 속도와 실행력을 높인다. 충분히 공유된 결정은 흔들리지 않고, 재작업도 줄어든다.
일하는 방식의 변화는 제도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사람의 일상에서 완성됩니다. 앱노트는
주 35시간이라는 숫자보다, 사람을 기준으로 조직을 설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직원들이 먼저 느낀 변화
이러한 변화는 직원들의 일상에서 먼저 드러났다. 퇴근 이후에도 업무를 계속 떠올리던 시간이 줄었고, 일과 삶 사이에 경계가 생겼다. 직원들은 “일이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예측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언제까지 일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오는 피로가 사라진 것이다.
조직 지표 역시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제도와 문화 변화 이후 앱노트는 단기 퇴사율이 낮아졌고, 평균 근속 기간은 점진적으로 늘어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떠나는 이유도 달라졌다. 과도한 업무 부담이나 소진이 아니라, 개인의 경로 선택에 따른 이동이 대부분이다.
오 부대표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예전에는 ‘버티다 떠난다’는 느낌이 있었다면, 지금은 ‘여기서 충분히 일해볼 수 있다’는 인식이 더 큽니다.”
균형은 복지가 아니라 방향이다
앱노트는 일·생활 균형을 완성된 상태로 보지 않는다. 장우용 대표는 이를 회사의 방향성으로 공유하고 있다. 근무시간, 재택근무, 소통 방식은 고정된 답이 아니라 계속 점검하고 조정해야 할 영역이라는 인식이다.
장 대표는 사람을 기준으로 한 판단이 결국 조직의 경쟁력이 된다고 강조해왔다. 성과는 사람을 소모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오래 일할 수 있을 때 지속된다는 것이다.
오정엽 부대표 역시 이 경험이 특정 기업만의 사례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거창한 제도가 없어도 됩니다. 사람을 먼저 보겠다는 기준만 있으면, 각 조직에 맞는 방식은 충분히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앱노트의 사례는 주 35시간 근무제 하나로 요약되지 않는다. 사람을 중심에 두고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구조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공공 영역에서 일·생활 균형 정책이 왜 중요한지를, 이 회사는 조용하지만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