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통신

퇴근 후엔 로그아웃합니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

세계 각국에서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퇴근 후 저를 찾지 마세요”라는 요구는 더 이상 개인의 휴식을 위한 이기적인 주장만은 아니다. 이는 일과 삶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노동의 가치를 다시 묻는 세계적인 흐름이다.

글. 차유미 

프랑스·포르투갈, ‘연결 차단’을 법적 의무로 명시

이 흐름의 출발은 프랑스다. 프랑스는 2017년 노동법을 개정해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노사가 ‘연결 차단’ 방식을 협상하도록 의무화했다. 구체적인 방법은 법이 정하지 않는다. 대신 기업과 노동자가 각자의 현실에 맞게 “어떻게 연결을 끊을 것인지”를 정하도록 했다. 실제로 퇴근 후에도 업무 대응을 강요받던 한 직원이 법원에서 보상 판결을 받으면서, 제도의 실효성도 확인됐다. 일부 기업은 야간 메일 서버 차단이나 휴가 중 이메일 자동 삭제 같은 시스템을 도입하며 기술적 해법을 선택했다.

포르투갈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2021년부터 고용주가 근무 시간 외에 근로자에게 연락하는 행위 자체를 위법으로 규정하고, 위반 시 벌금을 부과한다. 재택근무 확산으로 집이 ‘24시간 사무실’이 되는 현실을 법으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시스템’으로 원천 봉쇄하는 독일 기업들

법적 강제 없이도 기업 차원의 대응이 이뤄진 사례도 있다. 독일의 자동차 제조사들이 대표적이다. 폭스바겐은 2012년부터 퇴근 후 회사 이메일 연동을 중단하는 시스템을 단체협약으로 운영해왔다. 다임러는 ‘휴가 중 메일 삭제’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 휴가 중인 직원에게 온 메일은 자동으로 삭제되고, 발신자에게는 대체 연락처가 안내된다. 기술로 아예 연결 가능성 자체를 차단한 것이다.

2023년 이후: 유럽 밖으로 확산

이 같은 흐름은 2023년 이후 유럽을 넘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룩셈부르크와 벨기에는 기업 차원의 연결 차단 정책 수립을 의무화했고, 콜롬비아는 ‘노동 단절권’을 모든 근로자의 기본 인권으로 선언했다. 슬로베니아는 유예기간을 두고 제도 정착을 준비 중이며, 호주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초로 일정 규모 이상 사업장에 연결 차단권을 도입했다.

특히 호주는 직급, 대기 수당 여부, 돌봄 책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연락 거부의 합리성’을 판단하도록 설계했다.

디지털 휴식, 시혜 아닌 권리다

각국 제도는 디테일에서 차이가 난다. 법적 구속력이 있느냐 없느냐. 모든 근로자에게 적용되느냐, 원격근무자에게만 적용되느냐. 위반 시 벌금을 물리느냐, 노사 협의만 의무화하느냐.

하지만 방향은 같다. 디지털 기기가 삶을 침범하는 속도만큼, 법적 보호도 따라가야 한다는 것. 쉼표 없이 달리는 ‘상시 연결’ 사회에서, 멈출 권리를 제도화하는 실험이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이다.

이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복지 차원의 혜택이 아니라, 노동자의 정신 건강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필수 권리라는 사회적 합의를 반영한 것이다.

해외 주요국 ‘연결되지 않을 권리’ 도입 현황

국가 시행 연도 핵심 내용 비고
프랑스 2017년 50인 이상 기업 노사 협의 의무화 세계 최초 법제화
포르투갈 2021년 업무 외 시간 연락 금지 법제화 위반 시 과태료 부과
벨기에 2022년 공무원 대상 연락 거부권 도입 민간 기업 확대 추진 중
호주 2024년 불합리한 연락 거부권 및 불이익 금지 최신 입법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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