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인터뷰

노래가 된 댓글, 세상을 바꾼 선의

가수 하림

댓글 하나가 노래가 되고, 노래 하나가 법이 됐다. 하림은 그 흐름의 한가운데 서 있었지만, 정작 자신은 “노래를 한 게 아니라 그곳에 노래가 가 있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미안함이 쌓여 각오가 되고, 각오가 쌓여 선의가 된 한 예술가의 이야기.

글. 하경헌 경향신문 기자  사진. 오충근

댓글 하나가 법이 되기까지

2020년 가수 하림이 인터넷 댓글로 만들어진 시에 곡을 붙인 노래 <그 쇳물 쓰지 마라>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노동운동의 범주를 비약적으로 넓힌 시도로 평가받는다. 2010년 당진의 철강업체에서 20대 청년이 사망한 사고 기사에 한 누리꾼이 댓글을 달았고, 그것이 노래가 되었다. 이 시는 책이 되고, 연극이 되고, 다큐멘터리 영화가 되었다.

여느 예술 장르가 그렇듯 하림의 노래도 챌린지 형태로 퍼져 나갔는데, 당시 경기도지사, 국회의원, 가수 호란 등이 이어 불렀다. 결국 이 노래는 중대재해처벌법 입법의 시초가 된 곡으로 꼽힌다.

여러 이름을 품고 사는 사람

이렇듯 노래는 모두의 가슴을 동시에 울리고, 그 울림은 다시 빠른 시간 안에 되돌아오는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노래의 시초가 된 하림의 시작은 소박하고 단출했다. 어딘가에서 노동 활동가로도 소개되고 있는 하림은 다양한 직업군을 한 몸에 품고 있는 예술가다. 그는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이며, 노래를 짓고 부르는 가수이기도 하다. 연주자이자 공연 기획자이며 얼마 전까지는 교수이기도 했다. 이 모든 요소를 조합하고 통솔하는 ‘문화기획자’라 불리기도 한다. 노동과 일상, 어쩌면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삶을 짓고 노래하는 하림의 모습에는 모두가 바라는 ‘평범’의 가치가 숨어 있다.

“고용노동부와는 2023년에 만났어요. 당시에는 여러 직업을 가진 ‘N잡러’의 위치에서 만났던 것 같군요. ‘그 쇳물 쓰지 마라’ 챌린지 이후 여러 매체와 인터뷰했던 기억이 나요. 당시에는 화려한 ‘N잡러’였지만 지금은 몇 개 정리된 상태고요. 또 새로운 직업을 찾아가며 중년의 프리랜서로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 그에게 ‘그 쇳물 쓰지 마라’의 열기는 조금은 예전 일이 되었고, 최근 진행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이하 우사일) 프로젝트도 거의 막바지다. ‘하림의 사계절 문학책장’이라는 이름으로 나주에서 지역 사람들과 새로운 공연을 만들고 있으며, 국악과 함께하는 ‘여우락 페스티벌’도 진행한다. 지역의 이야기를 담기 위한 ‘할머니의 바다’는 그가 최근 특히 애정을 쏟는 프로젝트다.

떠도는 자들의 노래가 닿은 곳

그의 행보는 늘 다채로우면서도 한결같다. 최근 강화된 산업안전보건법의 영향으로 도급인 책임 확대, 폭염 및 밀폐 공간 기준 강화, 위험성 평가 의무화 등이 개정되면서 ‘우사일’ 프로젝트는 다시금 그의 활동을 조명하게 했다.

“처음 제 이름 앞에 ‘노동운동가’라는 꼬리표가 붙고, 검색 사이트에 ‘노동활동가’로 나오는 것을 보고 당황하긴 했어요. 제게 그런 거창한 명칭을 붙여도 되나 싶었지만, 오랜 고민 끝에 제가 하는 일을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어떤 프로젝트든 시작할 때는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고, 많은 분의 기억에 남을지도 몰랐어요. 최근에도 강연 중에 <우사일>을 함께 부르는 시간이 있는데, 그 자리가 생각보다 뭉클해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아티스트 하림은 2001년 윤종신에 의해 발굴되어 1집 <다중인격자>로 데뷔했다. 대중의 감성을 파고든 <출국>이 큰 사랑을 받으며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올랐고, 2010년 이후 윤종신, 조정치와 함께 ‘신치림’으로 활동하며 예능 프로그램에서 ‘예능인’이라는 호칭도 얻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노동과 산업안전에 대해 노래하게 되었을까.

“예술가는 자신의 작업을 닮아간다고 하잖아요. 예술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이지만, 어쩌면 예술가 자신이 가장 많이 변화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활동하다 보니 월드뮤직을 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유랑하는 사람들, 난민들, 세상의 약자들을 많이 만났어요. 먼 곳에서 와서 일하다 다치는 사람들도 보게 됐죠. 성북동 라파엘 의료센터에서 열린 ‘국경 없는 음악회’에 참여하던 중, 한국 노동자를 위한 노래를 해달라는 제안과 함께 <그 쇳물 쓰지 마라>의 가사를 처음 접하게 됐습니다.”

미안함이 쌓여 노래가 되던 밤

대중 예술을 지향해 왔기에, 처음 노동 현장을 위한 노래를 시작할 때는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지인들조차 “네가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하림은 이에 대해 “내가 노래를 가지고 간 것이 아니라, 이미 그곳에 노래가 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열악한 곳에서 공연한 후 택배 노동자분이 돌아가신 일이 있었는데, 그때 누군가 제 손을 간절히 잡으셨어요. 당황해서 얼른 손을 빼며 ‘나중에 이야기하시죠’라고 넘겼지만, 내내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경북 구미의 해고 노동자 고공농성 때도 건강 문제로 가지 못했죠. 그런 미안함이 쌓여갔어요. 결국 예술가가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숙제였던 것 같아요. 나의 가치가 음원 차트나 매출에 있을까 고민해 보면, 결국 제 재능이 누군가를 돕거나 살리고 위로할 수 있을 때 가장 빛난다고 생각합니다.”

생소한 노동 현장 용어들 사이에서 겉도는 기분을 느끼던 날들도 있었다.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진 계기는 2023년 초등학교 교사의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그때부터 마음속에 담아둔 노래들을 꺼내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예술가 역시 노동을 한다고 믿는다. 그 노동에는 자아가 투영되어 있으며, 억지로 해야만 하는 일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때 예술가의 소명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선의란, 그것을 끝내 놓지 않는 일

“직업 음악가로서 음악이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진지하게 탐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음악으로 돈을 벌다 보면 그것이 온전히 자기만의 것이라 착각하기 쉽지만, 듣는 이에게는 수많은 소리 중 하나일 뿐이죠. 이런 고민이 없다면 스스로 오해하고 상처 입게 됩니다. 저는 음악을 하며 이 길을 결코 그만두지 못할 것임을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일의 가치를 오직 이윤으로만 치환하려는 세상에 맞서 마음속의 선의를 지키는 것, 그것이 곧 저만의 노동운동이라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이제 새로운 프로젝트 자체가 곧 새로운 앨범이다. 그래서 2004년 이후 멈춘 정규 앨범 작업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단호히 말한다. 음악의 영향력을 고민하고 선의를 지키려는 그의 생각은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묵직한 울림을 준다.

“이 인터뷰를 통해 많은 분의 일상에 제 생각이 조금이나마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지난 5년간의 솔직한 고백이기도 해요. 이제 ‘할머니의 바다’ 프로젝트와 함께 나아가려 합니다. 제가 만든 노래들이 이 인터뷰와 함께 여러분의 마음에 깊이 닿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이 소중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누군가의 가족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합니다.

내가 일하다 다치면
엄마 가슴 무너지고요
집에 못 돌아 가면은
가족은 어떡합니까

우리는 모두 다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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