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작가가 된 지 십 년이 조금 넘었다. 시작은 우연이었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 대리로 진급 하자마자 막무가내로 그만뒀다. 그리고 역시나 막무가내로 대학원을 준비하던 중 등록금에 보탬이 될까 싶어 만화를 그렸다. 불행히도 대학원은 떨어졌지만, 다행히도 데뷔작인 <아만자>로 상을 받고, 단행본을 출간했으며, 차기작 제안까지 받게 됐다. 그 뒤로도 쭈욱 우연의 연속이었다. 만화를 그리다 어느 사보에 실릴 짧은 글을 써달라는 제안을 받아 글을 썼고, 그 글을 본 출판사 편집자에게 연락을 받아 수필을 쓰게 되었다. 그렇게 연달아 네 권의 수필을 쓴 뒤, 드라마 각본 제안이 들어왔고 이후로는 줄곧 드라마와 영화 각본 작업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때마다 하는 일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큰 범주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해왔기에 계속 ‘작가’로 불리고 있다.
AI의 발전이 화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다소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변화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입맛대로 내가 원하는 음악과 그림, 글, 그리고 영상까지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물론, 하루 종일 컴퓨터를 붙잡고 씨름을 해야 했던 단순 반복적 서류 업무를 순식간에 처리한다. 작가로서 내가 느끼는 편리함도 많다. 무엇보다 각본을 쓰기 위한 자료 조사를 위해 발품을 팔아야 할 수고가 적어졌다. 궁금한 부분에 대해 질문하면 지치지도, 질리지도 않고 자료를 조사해 와주고, 검증은 물론 개연성까지 확인해 주기 때문이다.
놀라운 AI 덕분에 많은 것들이 편리해졌지만, 마냥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지금이야 인공지능이 작가인 나의 보조적인 역할을 해준다지만, 머지않은 시기에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어 발전한다면 ‘앞으로도 내가 작가로 불릴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런 걱정은 나만이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반농담 식으로 떠돌던 ‘미래에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는 직업 리스트’는 이미 당면한 일이 됐다. 각종 제조 현장의 노동자들을 대체할 로봇이 양산에 들어갔고, 글로벌 기업에서 기존 직무를 인공지능이 대체해 직원을 대량 해고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물론 아직은 ‘일부’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당장은 대다수의 사업장이 로봇을 살 정도로 ‘로봇 도입 비용이 인건비를 대체할 만큼 낮지 않고’, 인공지능에겐 복잡 미묘하게 꼬여서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상황에 임기응변으로 대응할 수 있는 ‘유도리(융통성)’가 없다. 아직은 사람이 일할 여지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대량생산의 무서운 점은 원가 절감이기에, 로봇의 값이 점점 싸져 ‘노동자를 쓰는 것보다 싼’ 가격에 도달할 수 있다(지금도 키오스크와 서빙 로봇, 테이블 오더 앱은 맹활약 중이다). 복잡한 업무 역시 점차적으로 표준화하고 규격화하여 ‘유도리’가 필요 없는 통제된 환경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인간은 점점 더 ‘로봇을 쓸만한 단가가 안 나오는’ 영역의 일로 밀려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공포가 엄습한다. 실로 ‘노동자’의 위기다.
그러나 동시에 지나친 걱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인류의 역사는 기술과 도구의 발전과 함께 번창해 왔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대중화되었다고 자동차가, 사진기가 만들어졌다고 그림이, MP3가 생겼다고 콘서트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일이 생겨나고, 더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며, 더 깊게 연구하고, 더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사람이 다양한 결실을 이룰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드라마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우리 역시 지구 반대편에서 개발된 기술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것도 다 기술과 도구의 발전 덕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로봇과 인공지능이 내 일자리를 빼앗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떨다 제2의 러다이트 운동*을 벌이겠다며 데이터 센터를 습격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보단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전이라는 훌륭한 기술과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또한 그 발전으로 얻은 효용을 어떻게 사회에 환원하고 재분배할 수 있는가를 의연하고 성숙하게 고민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일 것이다.
당장 작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이런 글을 씀으로써 모두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 19세기 초 영국 산업 혁명기 당시, 기계가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믿어 직물 기계를 파괴하며 기술의 급격한 진보에 저항했던 민중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