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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에서 노동으로,
숫자 너머의 삶을 지키는 사람
울산지방고용노동청 이정욱 노동감독관
누군가는 임금을 받지 못한 채 하루를 버틴다. 누군가는 방법을 몰라, 누군가는 두려워 신고조차 하지 못한다. 노동의 문제는 늘 드러난 뒤에야 이야기되지만, 그 이전에는 늘 ‘망설임의 시간’이 존재한다. 울산지청 이정욱 감독관은 그 시간을 줄이는 일을 한다. 현장에서 시작된 문제를 끝까지 따라가고, 그 결과로 ‘당연한 권리’를 현실로 돌려놓는다. 그는 ‘2025년 올해의 근로감독관’으로 선정됐다. 그를 설명하는 가장 분명한 장면은 임금체불 사업주를 구속으로 이끈 사건이다.
글. 김혜영
사진. 오충근
선을 넘은 체불, 책임을 묻다
사건은 요양병원에서 시작됐다. 임금과 퇴직금이 지급되지 않았다는 신고였다. 처음에는 흔히 접하는 체불 사건처럼 보였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이상한 지점이 드러났다. 병원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수익도 발생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임금은 지급되지 않았다. 이정욱 감독관은 당시를 이렇게 설명했다.
“단순히 경영이 어려워서 발생한 체불이라면 접근 방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조사할수록 상황이 달랐습니다. 자금 흐름을 보니 법인 수익이 개인 계좌로 빠져나가고 있었고, 그 돈이 사적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는 정황이 명확했습니다. 이건 더 이상 단순한 체불이 아니라 ‘의도된 침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사건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졌다. 단순한 분쟁이 아니라, 법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노동의 대가를 침해한 구조적 문제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감독관의 판단은 ‘조정’이 아닌 ‘책임’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디까지 책임을 물을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계좌추적과 압수수색을 통해 자금 흐름을 확인했고, 결국 사업주는 구속됐다. 이 사건으로 확인된 피해 근로자는 100명이 넘었고, 조사가 이어지며 규모는 더 커졌다. 이 과정에서 사건은 개별 사업장을 넘어, 임금체불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환기하는 계기로 이어졌다.
“사실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마다 늘 고민이 됩니다. 법원에서 받아들여질지에 대한 부담도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선을 넘었다’고 판단되는 순간에는 그 기준을 분명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처벌과 해결 사이, 감독관의 판단
하지만 모든 사건이 이렇게 끝나는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 마주하는 대부분의 체불은 조금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경영상의 어려움, 법에 대한 이해 부족, 관리 여력의 한계. 같은 ‘체불’이라는 결과라도 그 과정과 원인은 각기 다르다. 이정욱 감독관은 감독관의 역할이 단순히 처벌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큰 고민은 ‘이 사건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가’입니다. 형사처벌을 한다고 해서 근로자의 임금이 바로 돌아가는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상황에 따라서는 지원 제도를 안내하거나 현실적인 해결 방안을 함께 찾는 과정이 더 중요할 때도 많습니다. 결국 감독관의 역할은 처벌 그 자체보다, 권리가 실제로 회복되도록 만드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법을 집행하는 동시에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업무는 늘 균형 위에 있다. 법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지만, 사람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이 균형이 무너지면 사건은 해결되더라도 현장은 더 큰 갈등을 남기게 된다.
“근로자는 당연히 억울한 상태로 오시고, 사업주 역시 나름의 사정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듣고 법적으로 어디까지 가능한지 설명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일을 ‘문과와 이과를 동시에 요구하는 직무’라고 생각합니다. 법과 숫자를 정확히 알아야 하고, 동시에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는 판례를 꾸준히 찾아보고, 사례를 정리하고,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한 방법도 계속 고민한다. 이러한 축적은 단순한 업무 숙련을 넘어, 현장에서의 판단력을 높이는 기반이 된다. 결국 정확한 판단이야말로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고 신뢰를 만드는 출발점이 된다.
“특별히 대단한 목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제가 더 정확하게 판단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래야 불필요한 갈등도 줄일 수 있고, 결과적으로는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로감독관에서 노동감독관으로,
이름의 변화가 현장에서의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도록 하겠습니다."
노동감독관으로, 더 넓어진 현장
올해 하반기부터 ‘근로감독관’은 ‘노동감독관’으로 명칭이 바뀐다. 이 변화는 단순한 이름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의 형태가 빠르게 달라지고 있고, 감독의 범위 또한 확장되고 있다. 기존의 고용관계로 설명되지 않는 다양한 노동이 등장하면서, 감독의 기준 역시 함께 재정립되고 있다. 이정욱 감독관은 이 변화를 ‘역할의 확장’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예전에는 비교적 명확한 고용관계 안에서 문제를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면, 지금은 다양한 형태의 노동이 등장하면서 판단 자체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단순히 사건을 처리하는 수준을 넘어서 노동을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감독관의 시야도 그만큼 넓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곧 울산 동부지청으로 자리를 옮긴다. 노동조합 관련 업무가 집중된 지역이다. 기대보다는 부담이 먼저라는 말도 덧붙였다. 새로운 환경은 그만큼 더 복잡한 문제와 마주해야 함을 의미한다.
“업무의 범위가 넓어지고 난이도도 올라갈 것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다만 어느 자리에서든 결국 하는 일의 본질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을 직접 보고, 사실을 확인하고, 그에 맞게 판단하는 것. 그 과정을 충실히 해 나가는 것이 감독관으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크게 특별한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지금 맡은 일을 잘 해내는 게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일이 생계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그 무게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임금은 숫자가 아니라 삶이다. 그 당연한 원칙을 현장에서 지켜내는 일. 이정욱 감독관은 오늘도 그 경계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