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통신
노동시간은 길이가 아니라 밀도로 말한다
각국의 주4일 일하는 풍경
지난해 우리나라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1,833시간으로 2024년(1, 865시간)보다 32시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제도적 보완과 문화적 변화에 힘입어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지만, 국제적 기준과 비교하면 여전히 장시간 노동 국가군에 속해 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사정은 어떨까.
글. 편집실
자료. OECD, 한국무역협회, 유럽통계청
독일
적게 일하지만
헐겁게 일하지는 않는 나라
독일은 ‘가장 짧게 일하는 나라’로 꼽힌다. 자료에 따르면 독일 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약 1,332시간으로, 노동시간이 긴 편인 멕시코(약 2,205시간)보다 900시간 가까이 적고 OECD 평균보다도 훨씬 짧다. 그런데 정작 독일의 인상은 ‘한가한 나라’와는 거리가 멀다. 자동차, 기계, 화학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이 경제를 떠받치고 있고, 짧게 일하되 밀도 있게 일하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어서다. 독일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시간을 채우는 것과 성과를 채우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이다.
네덜란드
주4일제가 없어도
이미 짧게 일하는 사회
네덜란드는 법으로 주4일제를 전면 도입한 나라는 아니지만, 현실에서는 가장 먼저 ‘짧은 노동사회’에 다다른 나라이다. 유럽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네덜란드의 주당 실근로시간은 32.1시간으로 EU 국가 중 가장 짧다. OECD 국가 중 파트타임 근로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이기도 한데, 전체 근로자의 약 39%가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핵심은 파트타임이 주변적 선택이 아니라 생활의 표준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다. 이 나라에서 덜 일한다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일을 삶 전체의 한 부분으로 배치하는 감각에 가깝다.
아이슬란드
주4일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만족도’
아이슬란드는 흔히 주4일제의 상징처럼 불리지만, 정확히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진행된 ‘주 35~36시간 노동’ 실험으로 주목받았다. 약 2,500명이 참여한 이 시험에서 노동시간은 줄었지만 생산성과 서비스 수준은 대체로 유지되거나 오히려 개선됐다. 노동자들의 스트레스와 번아웃은 줄고, 삶의 만족도는 높아졌다. 이후 노사협약이 확대되면서 전체 노동인구의 약 86%가 더 짧은 노동시간으로 이동했거나 그 권리를 확보했다. 아이슬란드의 힘은 구호가 아니라 결과에 있다.
영국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주4일제
영국은 주4일제를 가장 대중적으로 증명한 사례에 가깝다. 2022년 6월부터 12월까지 61개 기업, 약 2,900명이 임금 삭감 없이 노동시간을 20% 줄이는 실험에 참여했다. 번아웃과 스트레스가 줄고, 수면 문제와 병가도 감소했으며 이직률도 눈에 띄게 낮아졌다. 실험 종료 직후 61개 기업 중 56곳이 제도를 이어가기로 했고, 1년 뒤 후속 조사에서도 최소 54곳이 여전히 유지 중이었다. 주4일제가 복지 수준을 넘어 실제로 조직 운영이 가능한 모델임을 보여준 셈이다.
‘덜 일해도 더 잘 굴러갈 수 있는 사회’를 향해
모든 나라가 같은 방식으로 주4일제를 상상하지는 않는다. 아랍에미리트 연방정부는 2022년부터 월~목 8시간, 금요일은 반일 근무하는 주4.5일제를 운영하며, 샤르자(UAE 토후국 중 하나)는 공공부문에서 금·토·일 3일 주말의 사실상 주4일 근무를 시행한다. 프랑스는 2000년(소기업은 2002년)부터 법정 주당 노동시간을 35시간으로 낮췄다.
이처럼 주4일제의 모습은 나라마다 금요일을 통째로 비우는 방식도 있고, 하루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식도 있고, 법정 기준 자체를 낮추는 방식도 있다. 주4일제 논의는 ‘하루를 더 쉬느냐’가 아니라 ‘충분히 설계 가능한 제도’로 접근해야 할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