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인터뷰
용기가 두 번째 페이지를 연다
배우 소지섭
한때 소지섭을 떠올리면 비장한 청년과 깊은 상처를 지닌 인물이 먼저 생각났다. 그러나 지금은 딸을 걱정하고, 친구들과 호흡하며, 추위 속에서도 가족을 찾아 나서는 아버지가 됐다. 소지섭에게 ‘배우’라는 일은 자신이 머물러 있던 자리에서 늘 한 걸음 나아가는 선택이었다.
정리. 하경헌 경향신문 기자
사진. 피프티원케이
용기의 있음과 없음, 그 사이의 감정
드라마와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용기가 있다. 처음부터 용기가 넘쳐 전 지구적 구원 서사에 등장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처음에는 비겁함도 있었지만 각성해 용기를 내는 이들도 있다. 어쩌면 이 시대 모든 드라마와 영화의 주제는 이 용기의 있음과 없음, 그 사이 감정의 틈을 보는 일일 수도 있겠다.
작품 안에서는 물론 모두 용기가 있지만, 실제로 연기를 하는 배우가 용기가 있는지는 쉽게 알기 어렵다. 하지만 최근 우리는 그 적절한 사례를 TV를 통해 목격했다. 2026년 모든 드라마와 영화를 통틀어 손꼽힐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움직인 작품. SBS 드라마 ‘김부장’의 소지섭이 그러했다.
배우란 배역을 담는 그릇
소지섭은 ‘김부장’에서 평소에는 저축은행의 평범한 직원이자 고2의 딸을 둔 아빠다. 웬만한 다툼에 끼어들지도 않던 그는 사실 과거 코드명 ‘66’으로 불리던 전설적인 북한 공작원이었다.
“2회에 (시청률이) 15%가 됐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어요. 그리고 20%를 넘기기에 또 ‘이게 뭐지? 이게 된다고?’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고 할까요. 요즘에도 이런 사랑과 시청률이 가능한가 싶었어요. 아직도 얼떨떨하고 감사합니다. 액션이 먼저가 아니라 감정을 먼저 쌓고, 그 이후 액션을 보여준 지점을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신 것 같아요.”
하지만 실제 소지섭도 ‘아빠’로서의 생활감을 잃지 않을 정도로만 몸을 감량하고, 액션장면을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등 용기를 냈다.
“정말 추운 상황에서 촬영을 많이 했어요. 한파에 양복 한 벌에 비까지 맞으면서 촬영한 적이 있었거든요. 딸이 눈앞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때인데도 추위가 그런 감정까지 덮어버리는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민지를 찾기 위해 갔던 냉동창고 장면이 가장 힘들었는데요. 연기를 못 할 정도로 추웠던 기억이 납니다.”
“주연과 조연, 단역과 엑스트라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다하는 모든 일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완성합니다. 그 안에서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큰 영광입니다.”
동료들과 나눈 작품의 영광
그에게는 작품의 인기와 영광을 기꺼이 다른 이에게 돌리고, 이를 함께 누릴 수 있는 용기도 있었다. 그는 인기 원동력을 극 중 친구들로 등장한 성한수 역 배우 최대훈, 박진철 역 배우 윤경호 등에게 돌렸다.
“(윤)경호는 말이 많지만 온몸으로 표현하는 연기를 잘해요. (최)대훈이는 계산해서 조리 있게 말하는 연기를 잘합니다. 저는 묵묵하게 중심을 잡는 연기를 잘해서 셋의 호흡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주강찬 역으로 나오는 주상욱과도 감정이 맺힌 액션장면을 잘 소화해주었습니다. 민지 역을 해준 (서)수민이는 촬영 첫날 하트 모양의 캔디를 주면서 ‘잘 부탁한다’고 말했어요. 오히려 어색한 부분이 그 나이의 아버지와 딸 같아서 좋았어요.”
‘아빠’ 역할을 받아들인 배우의 선택
작품에도 용기 있는 캐릭터 ‘김부장’으로 등장하고, 촬영현장에서 안팎으로 용기를 내지만 사실 소지섭의 용기는 이 작품을 택한 시작점에서 가장 강렬하게 실감할 수 있다. 그의 나이는 1977년생으로 아직 48세다. 1995년 한 의류 브랜드의 모델로 데뷔한 소지섭의 연예계 경력도 벌써 30년에 이른다.
드라마에서 기혼의 연기를 거의 하지 않던 소지섭은, 13년 만의 SBS 드라마 복귀작인 ‘김부장’에서 기꺼이 ‘아빠’의 역할을 받아들였다. 그것도 심지어 고등학교 2학년, 성인이 다 된 자녀를 둔 아버지 역할이다. ‘빨리 늙음’을 걱정해 기혼자 심지어 고교생의 아빠 역할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재의 분위기에서, 그의 선택은 놀라움이자 진정한 용기로 받아들여진다.
“예전에는 별명이 ‘소간지’라고 했었어요. 멋있음에 대한 부담 때문에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해야 할 것 같아서 외출을 했다가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 옷도 여러 차례 바꿔 입곤 했었습니다. 지금은 정말 감사한 것 같아요. 팬분들이 애정으로 붙여주신 저만의 특별한 애칭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20년이 지나도 ‘소간지’로 불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오래 쌓아온 신뢰와 새로운 페이지
“예전에는 배우 소지섭이라고 하면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이제는 ‘김부장’이 그런 작품이 된 것 같습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제 배우 인생의 첫 페이지를 열어줬다면, ‘김부장’은 두 번째 페이지를 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는, 용기가 있는 사람만이 열 수 있으며 그 결과를 만끽할 수 있다. 극 안에서도 용기가 있고, 촬영 현장에서도 모두를 받치는 용기를 냈으며, 그 작품을 선택할 때까지도 용기에 차 있던 그의 모습은 용기가 어떻게 한 사람 일의 결과를 바꾸어내는지 그 생생한 목격담이 된다. 그리고 일하는 모두에게도 용기가 중요함을 역설한다.
“땀 흘리는 모든 분들을 위한 매체 <월간 내일>의 인터뷰에 참여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이번 역할을 통해 아빠까지 하면서 앞으로 더욱 많은 역할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월간 내일> 독자분들도 제가 앞으로 보일 모습을 많이 기대해주시고, 행복한 나날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