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일
온라인 세상에서의 마지막 배웅
디지털 장의사
한 번 올라간 글과 사진, 댓글과 영상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계정을 잊어버린 뒤에도, 삶의 국면이 바뀐 뒤에도, 과거의 기록은 검색창 어딘가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디지털 장의사는 이렇게 온라인에 남겨진 원치 않는 흔적을 찾아 정리하고, 개인이 스스로 지우기 어려운 기록의 삭제나 노출 최소화를 돕는 사람이다.
글. 편집실
자료. 한국고용정보원 <한국직업사전>,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일러스트. AI GENERATED
사라지지 않는 기록 앞에 생겨난 직업
인터넷은 편리하지만, 한편으로는 좀처럼 잊지 않는 공간이기도 하다. 오래전에 남긴 게시물, 예전에 쓰던 계정, 무심코 올린 사진이나 댓글은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도 뜻밖의 순간 다시 호출된다. 디지털 장의사는 바로 이런 온라인 흔적을 점검하고, 당사자가 더는 공개되길 원하지 않는 정보가 계속 떠돌지 않도록 정리하는 사람이다. 한국고용정보원 <한국직업사전>에서도 이 직업을 온라인에 남은 개인 기록이나 민감 정보를 찾아 없애거나 검색 노출을 낮추는 전문가로 소개한다. 결국 이 일은 단순한 삭제 대행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기록 관리와 평판 관리가 만나는 접점에 가깝다.
이 직업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잊힐 권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지우개 서비스’는 아동·청소년 시기에 작성한 게시물 가운데 개인정보가 포함된 경우, 삭제나 블라인드 처리, 검색 결과 비노출을 지원한다. 신청 대상은 30세 미만이며, 미성년 시기에 직접 작성한 게시물이라는 점과 개인정보 포함 여부를 확인할 수 있으면 담당자가 게시판 관리자나 사업자에게 삭제 또는 검색 차단을 요청한다. 제도가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온라인 기록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실수로만 남겨둘 일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다뤄야 할 생활 문제라는 점이다.
검색 결과 뒤편에서 이루어지는 세밀한 노동
겉으로 보면 ‘게시물을 지운다’는 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있지만, 실제 업무는 훨씬 복합적이다. 어떤 정보가 삭제 요청 대상이 되는지 살피고, 어느 플랫폼에서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확인해야 하며, 이미 다른 곳으로 퍼진 흔적이 있다면 그 흐름도 추적해야 한다. 삭제가 끝난 뒤에도 비슷한 게시물이 다시 올라오지는 않는지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그래서 디지털 장의사에게는 개인정보보호 관련 제도에 대한 이해, 플랫폼 운영 방식과 검색 구조에 대한 지식, 데이터 추적 능력, 그리고 민감한 사연을 차분히 듣고 설명할 수 있는 소통 역량이 함께 요구된다. 기술직이면서도 상담직의 성격을 함께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이 직업은 순기능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안랩(AhnLab)에서는 디지털 장의사가 불법촬영물 피해나 개인정보 노출 대응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반대로 정당한 비판이나 공익적 기록까지 지우는 데 악용될 우려도 있다고 짚었다. 정부 역시 디지털 장의사 제도를 논의하면서 불법적 활동과 부작용을 줄일 장치를 함께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삭제 기술 자체보다 판단의 기준이다. 피해 회복을 돕는 정당한 삭제와 사회적으로 남아 있어야 할 기록을 가리는 부당한 개입은 분명히 다르다. 디지털 장의사는 그 경계를 실무에서 가장 가까이 마주하는 직업이다.
누군가의 현재를 지키기 위해 과거를 정리하는 일
디지털 장의사는 과거를 지워주는 사람이기보다, 과거의 흔적이 한 사람의 오늘을 과도하게 붙들지 않도록 돕는 사람에 가깝다. 온라인 기록이 취업과 인간관계, 평판과 안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시대, 이들의 일은 점점 더 생활 밀착형 전문성으로 바뀌고 있다. 더 쉽게 남는 시대일수록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걷어낼지 신중하게 판단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디지털 장의사는 그 조용한 판단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기록을 지우는 손끝의 결정 하나하나가 결국 누군가의 다음 이력서, 다음 관계, 다음 하루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사람이 죽으면 몸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가 남긴 말과 사진은 서버 어딘가에
계속 숨을 쉰다. 디지털 장의사는 그 흔적을 대신 거두는 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