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인터뷰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디테일의 미학

배우 차학연

하나의 문화 콘텐츠가 결정적으로 대중의 마음에 가닿기 위해서는 ‘섬세함’,
그 작은 디테일이 하나 더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일을 잘 알고, 잘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일을 사랑해야 하고, 일을 통해 보이고 싶은 메시지를 스스로 명확하게 알고 있을 때 가능하다.
아이돌 그룹 빅스의 멤버 ‘엔’으로도 유명한 배우 차학연은 그 섬세함의 미학을 제대로 체험했다.

글. 하경헌 경향신문 기자  
사진. 51k

연기를 생활로 ···
디테일이 만든 캐릭터

차학연은 최근 막을 내린 MBC 드라마 ‘노무사 노무진’에서 고견우 역을 연기했다. 기자 출신 크리에이터로 각종 사회적인 이슈를 펜 대신 카메라를 들고 쫓는 인물이다. 어느 날 인연을 맺은 노무사 노무진(정경호)을 따라다니다 우리 사회의 배경에 깔려있는 노동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되고, 각종 부조리를 ‘게릴라군’처럼 채널을 통해 외부에 알렸다.

‘노무사 노무진’은 유령을 보는 노무사 노무진이 각종 노동 현장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한을 풀어준다는 내용이다. 흔히 ‘노동문제’라고 하면 무겁고 진중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리틀 포레스트’ 등을 연출한 임순례 감독은 이 작품에 ‘귀신 보는 노무사’라는 판타지 설정을 가미해 훨씬 대중에게 쉽게 다가오게 했다.

“대본을 받고 견우라는 인물의 매력을 느꼈어요. 그런데 대본을 보니 마냥 가볍지 않은 작품이었던 거죠. 진중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부담이 됐어요. 인물들이 사건을 대하는 데 있어 진심이 아닌 적은 없었고 코믹한 부분도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이 진심이었던 부분이 좋았습니다.”

일단 대본에서 설정된 캐릭터에 차학연은 자신의 노력으로 섬세함을 가미했다. 일단 전제하자면, 그는 보통의 크리에이터나 극 중 견우처럼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었다. 그래서 구독자를 뜻하는 ‘장아찌’들을 부르는 첫 장면부터 귓불이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

“제 방에 자그마하게 인터넷 방송 부스를 만들었어요. 누가 하라고 한 건 아니지만 사비를 들여 만들었죠. 조명도 설치하고 컴퓨터도 꾸며서 혼자 연습을 했습니다. 그리고 채널들을 보니까 많은 크리에이터분들이 걸어 다니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모두 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방송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 스타일로 만들어서 해보겠습니다’하고 감독님의 허락을 받고 저만의 방송을 했어요.”

그의 섬세함이 발현된 지점은 또 있다. 평소 동경하던 정경호와 함께 연기할 때도 그의 동선을 매니저를 통해 알아내 미리 파악한 다음, 촬영 전 항상 산책하는 정경호를 따라다니며 연기를 물었다.

“계속 선배님 곁에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차 밖에서 산책하시는 모습을 발견한 순간 바로 옆에 붙어서 이야기를 나눴죠. 귀찮으셨을 겁니다.(웃음) 매니저분을 통해 선배님의 매니저를 통해 도착 시각도 확인했거든요. 정경호 선배님이 촬영 현장에서 저를 인정하시는 순간 ‘견우에게 의지하시는구나’ 싶어 오히려 든든하고 책임감이 느껴졌어요.”

MBC 드라마 <노무사 노무진> 장면 중
노동문제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

‘노무사 노무진’은 노동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뤘던 작품답게 여러 사건이 펼쳐졌다. 현장실습을 했던 고교생의 사망사건, 간호사 사이의 이른바 ‘태움’으로 불리는 괴롭힘 사건, 청소 노동자의 쟁의, 주차장 직원의 폭염 사망사건 그리고 대미를 장식한 창고 화재사건 등 실제 사건에서 모티프를 딴 듯한 소재가 등장했다. 하지만 극을 다루는 시선은 마냥 분노나 복수에 가득 차 있지 않았다. 오히려 유쾌하고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는 장면이 많았다.

“극 중 대사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노동자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아마 이 대사가 저희의 드라마 주제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도 배우이고 직업이 있지만, 그에 앞서서 사람이기도 하잖아요. 보통 많은 일이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일인데 저는 그동안 이 일을 그냥 직업으로 대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작품을 하면서 조금씩 사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노동문제를 다룬 드라마’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는 드라마’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는 특히 ‘노무사 노무진’에서 청소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 5, 6회가 인상에 남았다고 했다. 노동자들의 쟁의 뒤에 숨어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을 둘러싼 이야기가 더욱 풍성하게 전해지자 안타까움과 슬픔이 밀려왔다. ‘바로 우리 가족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그 안타까움이 더욱 잘 다가왔다.

“방송이 되고 많은 반응을 찾다 보면 실제 일을 하시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분노해주시는 모습을 볼 수 있더라고요. 저희 드라마가 주로 홀수 회차에서는 분노하고, 짝수 회차에서는 해결하는 구조인데 화를 내시고, 안타까워하시는 분들에게 ‘한 회만 더 기다려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은 느낌이었죠. 소재로서는 극한의 노동자를 이야기하지만, 일상적인 노동자들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생각해요.”

노래와 연기가 業인 노동자

2012년 아이돌 그룹 빅스의 멤버로 데뷔한 그는 2014년 MBC 드라마 ‘호텔킹’으로 연기도 겸했다. 13년 동안 21장의 한국 앨범, 18편의 드라마. 최근 개봉한 ‘태양의 노래’ 한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 역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이기 앞서, 많은 사람들에게 노래와 연기로 기쁨을 주는 ‘노동자’다. 20대 초반부터 계약과 계약이 오가는 고용관계를 경험한 그 역시 이 과정의 중요함과 가치, 자신의 특별한 노동이 대중에게 어떤 기쁨을 주는지 체감했다.

“사실 예전에도 노무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조금 있었어요. 이번 작품의 사건을 접하면서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분노의 감정, 하나를 생각하기보다 감정의 깊이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고민을 좀 더 하게 됐고 해결은 다 할 수 없지만, 힘이 될 수 있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이 드라마가 많은 분들에게도 영향을 드렸으면 하고요.”

차학연은 이미 찍어놓은 한 편의 드라마를 비롯해 앞으로 두 편의 드라마 작품으로 대중을 만날 계획이다. 빅스로서도 10주년을 훌쩍 넘긴 여정을 멤버들과 계속할 예정이다. 작품을 위해 개인적으로 인터넷 방송 부스를 집에 차릴 정도로 애를 쓰고, 존경하는 선배의 동선까지 확인해 연기에 대한 갈증을 풀려 노력했던 그만의 세심함. 그의 가치 있는 ‘노동’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더욱 기쁘게 할 것인지. 이제 서른이 된 배우의 앞길은 희망차기만 하다.

“노무진이 극 중에 ‘이제 끝난 건가’하는 마지막 대사는 사실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무진이와 희주(설인아), 견우가 필요한 사람이 아직도 많다고 생각해요. 제가 느끼는 것처럼 이 드라마를 더욱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봐주시는 계기를 마련한 것 같습니다. 거창하지 않지만, 저희 ‘무진스(삼인방의 별명)’가 옆에 있습니다. 또 다른 무진스가 생겨날 것을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