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희극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순발력’이다.
KBS 공채 개그맨 출신 김원훈은 숏박스와 SNL 코리아,
그리고 최근 화제작 <직장인들>을 통해 순발력의 진가를 보여주며 예능계 대세로 떠올랐다.
글. 하경헌 경향신문 기자
사진. 메타코미디, 쿠팡플레이 제공
매일, 매시, 매분, 매초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이 시대의 속도감을 따라가기 위해 우리 모두에게는 ‘순발력’이라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순발력은 사전적 정의로 ‘근육이 순간적으로 빨리 수축하면서 내는 힘’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순간적으로 판단해 말하거나 행동하는 능력을 통칭한다.
순발력이 있는 사람은 변화하는 상황을 빠르게 판단해 행동으로 실천하고, 비록 성공은 못 할지라도 훗날 발전을 위한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렇다면 현대에 펼쳐져 있는 다양한 직업군 중에서 가장 순발력이 필요하고, 순발력이 부족하다면 생계의 위협까지도 이를 수 있는 직업은 무엇일까.
바로 말로 하는 직업, 특히 그 말로 재미를 주는 직업인 코미디언과 개그맨, 즉 희극인이 주인공이 아닐까 한다. KBS 공채 개그맨 출신으로 현재 연예계 대세로 떠오른 김원훈은 요즘 매주 순발력의 힘을 체감하고 있다. 바로 그가 출연 중인 쿠팡플레이의 오피스 드라마
<직장인들> 시리즈 그리고 SBS에서 출연 중인 <한탕 프로젝트-마이턴(이하 마이턴)> 녹화 때문이다.
“비슷한 제작진이 이전에 만드시고 계시는 ‘SNL 코리아’에 출연한 인연으로 ‘직장인들’이라는 작품에 출연하게 됐어요. 비슷한 작품이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겠지만, ‘SNL 코리아’는 기본적으로 대본이 있고 그 대본으로 상황이 굴러갑니다. 하지만 ‘직장인들’은 상황은 있지만, 따로 대본이 있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매번 촬영을 갈 때마다 ‘내가 상황에 맞게 잘 말할 수 있을까’하고 불안한 마음이 생기기도 하죠.”
<직장인들>은 방송인 신동엽과 배우 김민교와 지예은, 개그우먼 이수지와 김원훈 등 SNL 코리아를 이끄는 출연자들이 주를 이루는 상황극 드라마다. 여기에 화가 겸 배우로 활동 중인 백현진과 배우 현봉식, 가수 카더가든과 STAYC의 ‘윤’으로 활동 중인 심자윤이 출연 중이다.
이들은 신동엽이 극 중에서 세운 가상의 회사 ‘DY기획’을 배경으로, 매주 광고에 출연하기로 한 유명인사들이 찾아오면서 이들의 이미지를 컨설팅한다는 명목으로 놀리기를 쉬지 않는 드라마다. 여기에 SNL 코리아의 드라마 <MZ오피스>에서 등장했던 실제 직장에서의 극사실주의 설정이 이어지며 재미를 준다.
“대본과 애드리브의 비율로 따진다면 1 대 9 정도 되는 것 같아요. 그야말로 시작하는 말 정도만 대본에 있게 마련이고, 나머지는 배우들이 즉흥적으로 생각나는 말을 순발력 있게 하는 거죠. 그래도 제작진이 상황을 만들어주는 부분은 있어서, 많이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각자 출연자들이 역할을 맡고 연기를 하고
있죠.”
김원훈은 DY기획 35세 주임 김원훈을 연기한다. 늘 마케팅의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가슴 속에 사직서를 품고 살고, 회사의 먹이사슬 최하층에 위치한다. 하지만 유명인들이 고객으로 오면 그야말로 활개를 치고 날뛴다. 그의 놀림에 연기라는 사실을 잊고 웃음을 터뜨린 배우들이 한둘이 아니다.
첫 시즌에는 가수 겸 배우 혜리, 배우 고수, <고독한 미식가>의 일본 배우 마츠시게 유타카, 최지우, 강하늘, 추성훈 등이 먹잇감이 됐다. 8월부터는 배우 조정석, 바둑기사 이세돌, 배우 권나라, 래퍼 스윙스(문지훈), 배우 조여정, 정성일, 이민정, 이선빈이 표적이 됐다.
“첫 시즌에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임했어요. 그런데 시즌 1이 유명해지고 각종 숏폼 콘텐츠에서 거론되면서 조금 더 웃겨야 한다는 사명감과 부담감이 들더라고요. 저도 애드리브 연기를 해봐서 안정된 실력을 키우고 싶은데 안 되는 부분도 있더라고요.”
제작진의 구성 역시도 김원훈의 순발력이 극한으로 발휘되는 방향으로 흐른다. 일단 누가 출연하는지만 알지 사전에 이야기를 나누거나, 정보를 들을 기회는 없다. 오직 자신이 챙긴 지식과 정보, 감으로만 연기를 이어가야 한다. 그래서 항상 그의 첫인사는 “안녕하세요”였다가, 짓궂은 농담에 이은 “죄송합니다.
안녕히 가세요”로 끝나곤 한다.
“예전에 정말 직장생활을 한 적이 있어요. 그리고 주변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에게도 자문하기도 합니다. 회사에 대한 불만이라든지, 개선되면 좋은 점 등을 주로 듣는 것 같아요. 그리고 주고받는 질문과 답변 속에서 회사의 업무 형태라던지 자세한 회사의 업무 용어들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인천에서 태어난 김원훈은 명지전문대 연극영상학과 재학시절부터 개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뮤지컬을 전공했다. 희극 연기를 처음부터 준비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도 개그맨인지 배우인지 때로는 실베스터 스탤론인지 알 수 없는 ‘잘생긴’ 외모로 오해를 사기도 한다. 2015년 KBS 30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해 <개그콘서트> 무대를 통해 주로 활약했다.
하지만 그에게 순발력을 요구하는 순간은 시시각각 다가왔다. 2015년은 2000년대와 2010년대 TV 프로그램 중 가장 인기가 있었던 <개그콘서트>가 서서히 그 힘을 잃어가던 시기였다. 김원훈이 데뷔한 2015년 신인 개그맨들은 출연할 기회를 많이 얻지 못했다. 급기야 가장 왕성한 활동이 있어야 했던
2020년 코로나19가 닥쳤고 급기야 <개그콘서트>가 막을 내렸다.
“한 기수 후배인 31기 조진세와 함께 2019년 1월부터 우낌표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했어요. 하지만 생각보다 큰 관심을 받지 못했죠. 콘텐츠 제작에 대한 회의감이 오고, 슬럼프도 왔어요. 한 달에 50만 원도 안 되는 수익이라 생계도 어려웠고요. 그러다 숏박스라는 채널을 만났죠.”
2025년 9월 말 현재 350만 명에 육박하는 구독자수를 가진 숏박스는 2020년대 당시 유행했던 스케치 코미디의 일부였다. 스케치 코미디는 전통적인 콩트와 달리 길이가 5~7분 정도로 짧고, 상황 하나만 주고 자연스러운 배우들의 연기가 포인트인 코미디 장르다. 이 역시도 애드리브가 중요했다. 연기력을
위해 후배 개그우먼 엄지윤을 섭외했고, 오래된 연인의 이야기인 <장기연애> 시리즈가 인기를 얻으면서 이른바 이들은 ‘떡상’을 했다.
“저도 제 성공을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운이 잘 맞아서 숏박스 채널을 했고, 출연 중에 연기를 시작해 SNL 코리아를 하게 됐어요. 그리고 <직장인들>도 마찬가지죠. 지금은 역시 트로트 그룹에 대한 상황극을 하는 ‘마이턴’에 출연 중인데요. 정말 좋은 분들과 만나면서 제 순발력도 늘어가는 것
같습니다.”
김원훈은 최근 백상예술대상과 청룡시리즈어워즈에서 예능인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최근 예능 하면 빠지지 않는 인사가 됐다. 그를 키운 것은 숏박스나 SNL 코리아 <직장인들>에서 볼 수 있듯 순발력이었다. 하지만 김원훈은 순발력의 바탕이 되는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대화를 나눠야 하는 사람들의 정보도
사전에 빠짐없이 준비하고, 영상에서 특정 직군을 연기해야 한다면 그 직군의 사람들을 직접 만나 정보를 얻는 등 자료수집에도 열심이다. 그의 순발력은 뜨거운 열정의 노력에서 나오는 셈이다.
“저는 언젠가 제 순발력이 더 빛이 발할 수 있는 무대를 찾고 싶어요. 콩트 기반의 연기가 많아서 원래 김원훈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시는데, 저는 개그맨에 데뷔할 때부터 MC가 되고 싶었거든요. 제가 즉석에서 나오는 토크에 강합니다. 기회가 되면 MC도 하고 싶어요. 주어진 부분에 열심이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원훈의 지금을 만들었던 것은 순발력이다. 희극인이라면 누구나 순발력이 좋아야 하지만, 매주 이렇게 자신만의 애드리브로 콘텐츠를 채우는 일은 쉽지 않다. 그 바탕에는 순발력의 바탕이 되는 공부와 조사, 노력이 따른다. 이번 <직장인들 2>도 마찬가지다. 그는 필요한 사람이나 일이 있다면 반드시
경험해보고 연기에 이를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