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는 MOEL

보이지 않는 전파처럼,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온 기술자의 삶

동탑산업훈장 수훈 함영만 명장

벽면을 가득 메운 통신 장비들 사이에서 함영만 명장을 만났다.
그의 사무실은 각종 무선 통신 기기들로 빼곡했다. 올해 동탑산업훈장을 받은 그는
45년간 통신 분야에서 묵묵히 일해온, 독보적인 업적을 쌓은 인물이다.

글. 차유미  사진. 오충근

통신 산업의 버팀목,
최고 영예에 오르다

올해, 동탑산업훈장의 주인공은 함영만 명장이다. 2014년 대통령 표창, 2023년 고용노동부 장관상을 거쳐, 마침내 국가가 인정한 최고 영예에 오르게 된 것이다.

“엄청난 큰 영광이죠. 상상도 못 했는데, 이런 상을 받다니.” 함영만 명장은 여전히 벅찬 소회를 감추지 못했다. 그의 업적은 단순한 기술자가 아닌 산업의 버팀목에 가까웠다. 방송사의 송출 장비를 수리함으로써 전국 방방곡곡에 방송을 전달했고, 공항이나 철도, 군대 등 특수기관의 통신 서비스를 구축하는 데 일조했다. 그뿐만 아니라 외국에 의존하던 방송 송출 장비의 수리 체계를 국내 기술로 바꾸고, 세 건의 특허를 통해 외화를 절약했다. 2013년, 아날로그 TV가 사라지고 주파수를 새로 배치해야 할 때도 그는 최전선에 있었다. 전국의 송신소를 돌며 장비를 교체하고, 방송이 끊기지 않도록 밤을 새웠다. 덕분에 지금까지 어떤 위급한 순간에도 방송은 멈추지 않았고, 그가 쌓아놓은 주춧돌 위에 우리나라 통신 기술은 발전해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롱불 켜고 납땜하던 소년과
함께 자라난 ‘연결’

오늘의 명장을 만든 시작은 시골 소년 시절이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에서 중학교 시절, 과학 과제로 광석 라디오(Crystal Radio Receiver, 전력 없이 작동되는 라디오)를 조립하라는 것이었다. 어떤 장비도 도구도 구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납땜을 위해 숯불에 인두를 달궜고, 철사를 이어 안테나를 만들었다. 긴 안테나를 엮어 뒷산 소나무에 걸었을 때 들려온 소리. ‘삐-, 삐-, 삐-’ 모스 부호였다. 보이지 않는 전파가 먼 세상과 이어진다는 사실은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때부터 그는 외항선이나 항공사의 통신사를 꿈꿨으나, 인공위성의 등장과 함께 통신사라는 직업은 사라졌다. 대신 그는 방송국 송신소 장비 설치와 유지보수의 길을 택했다. 1970년대부터 KBS, MBC, SBS 등의 전국 송신소를 돌며 기계를 다뤘다. 일터는 늘 산꼭대기였다.

“방송이 나갈 때는 작업을 할 수 없어요. 새벽 2시부터 5시까지만 정비 작업이 가능합니다. 그 시간에 고장 신고가 오면 어디든 달려가야 해요.”

가장 먼 곳 중 하나가 남해 망운산. 편도 5시간, 왕복 10시간을 운전해야 했다. 새벽에 멧돼지와 마주치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렇게 세상의 소리가 멈춘 시간, 인적 드문 송신소에서 그는 기계를 점검하며 세상의 연결을 굳건히 지켜냈다.

“이 분야에 들어온 이상 최고가 되고 싶었다”

그는 무려 9번 도전 끝에 1997년 기술사 자격증을 얻었다. 국가기술자격의 최고 등급이다. 운전할 때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한 강의를 들으며 공부했고, 4년 반의 시간을 버텼다. 현재 그는 통신·전자 분야 두 개의 기술사를 보유하고 있다.

그는 또 여기서 멈춰 서지 않았다. 2008년 51세에 박사과정에 도전했다. 그러나 공부 도중 망막 파열을 겪었고, 지금도 한쪽 눈은 일부가 보이지 않는다. 그는 2012년 박사학위를 받으며, 이를 ‘영광의 상처’라고 했다. 이후 성균관대학교와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강의를 했고, 인하공업전문대학에서 멘토 활동을 하는 등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 일이 이제 3D 기피 직종이 됐어요. 산꼭대기 작업이 힘들고, 무선 기술 자체도 어려워서 보통 10년은 배워야 어느 정도 할 수 있거든요. 그렇다 보니 후속세대가 없다는 것이 걱정됩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에요. 자율주행차, IoT 등 모든 분야가 결국 통신 기술이거든요.”

그는 통신 기술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 길에 들어선 후배들에게 “남들이 하지 않는 길을 가라”고 당부한다.

계속되는 도전

함영만 명장은 71세의 고령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그에게 은퇴란 아직 멀게 느껴진다. 올해부터 시행된 「건축물 정보통신 유지보수 관리법」에 따라 새로운 사업 영역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는 새로운 법령에 맞춰 건물의 통신 설비를 관리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이미 필요한 교육까지 이수하며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 통신공사업 면허를 갖춘 그에게는 또 다른 기회로 다가온 것이다.

“통신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도태되죠.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더불어 후학들을 위한 활동에서도 결코 손을 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바쁜 일과나 방학 중에도 하나라도 더 배우겠다는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면, 조금 힘이 들어도 이것이 바로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 사회의 희망이니까요.”

45년 전 호롱불 아래에서 처음 들었던 모스 부호처럼, 함영만 명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상을 잇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보이지 않는 전파를 통해 사람과 사람, 세상과 세상을 굳건히 연결하면서 말이다.

산골 소년에서 대한민국 명장까지, 그는 꾸준함으로 연결의 역사를 쌓아올리며 새벽 송신소의 고독을 견디고 세상을 잇는 전파를 지켜왔다.

함께 하는 MO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