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인프라 소재 기업 뉴라이즌이 최근 ‘2025 대한민국 일자리 유공’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고용 창출과 근로환경 혁신을 동시에 이룬 공로가 인정된 것이다. 불과 5년 만에 직원과 매출이 몇 배로 성장한 비결은,
일과 삶을 새롭게 정의한 조직문화에 있었다.
글. 차유미 사진. 김근호
부산 수영구 뉴라이즌의 사무실 한켠에는 반도체 공정용 필터 샘플이 전시돼 있다. 언뜻 보면 평범한 필터 제품처럼 보이지만, 이것이야말로 뉴라이즌의 기술력을 상징하는 핵심 자산이다. 이승욱 대표는 “저희 주력 제품은 공기청정기나 자동차 에어컨 필터뿐 아니라, 국내 최대 반도체 기업들의 공정에 들어가는 핵심
필터까지 포함됩니다. 전 세계적으로 봐도 저희 수준의 청정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회사는 손에 꼽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설명했다.
그가 창업지를 부산으로 정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제가 원래 국내 청정가전 분야 대기업의 산하 연구소에서 근무했는데, 창원·부산권에 제조 인프라와 협력사들이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부산은 섬유와 소재 산업의 뿌리가 깊은 도시예요. 아버지도 섬유업에 종사하셨고, 저는 그 산업 DNA를 계승하고
싶었죠.” 단순히 개인적 연고만이 아니었다. 지역 산업이 침체된 현실 속에서도 그는 ‘부산에서도 기술 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하고 싶었다.
실제로 부산은 제조업의 역사가 깊고, 숙련된 기술 인력과 협력 네트워크가 잘 구축돼 있다. 이 대표는 이러한 지역적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동시에 침체된 지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자 했다. 울산 공장과 서울·안산 지사를 두면서도 본사를 부산에 둔 것은 이런 철학의 연장선이었다. “지역에서
시작한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승욱 대표의 경영 철학은 ‘효율적인 일, 충분한 쉼’으로 요약된다. 그가 주 4일제를 도입한 것도 이런 철학에서 출발했다. “대기업 연구소 시절, 상사가 퇴근하지 않으면 직원도 못 가는 문화가 너무 비합리적으로 느껴졌어요. 서로 피곤하고, 회사에도 손해죠. 저는 그런 구조를 반드시 깨고 싶었습니다.”
많은 스타트업이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더 많이 일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장시간 근무가 오히려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창의적 사고를 방해한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구성원들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어야 회사에서도 최선을 다할 수 있다고 믿었다.
뉴라이즌의 주 4일제는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정교한 시스템이다. 월, 화, 목은 공통 근무일이고, 수, 금 중 하루를 각자 선택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코어타임만 지키면 출퇴근은 자유다. “모든 구성원이 주 4일제를 택한 건 아닙니다. 제조·엔지니어링 부문은 현장 특성상 5일 근무를 유지하고,
다른 파트도 원하면 5일제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했어요. 결국 신뢰와 책임의 문제니까요.”
흥미로운 점은 주 4일제 도입 후 오히려 업무 효율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구성원들은 제한된 시간 안에 집중해서 일하게 됐고, 불필요한 회의나 업무는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그는 “제도가 완벽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시행착오를 감수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 제도를 뒷받침하는 장치들도 촘촘하다. 근무 시간 외에는 알림이 가지 않도록 구현된 시스템은 기본이다. 하루 두 번의 ‘피카타임(Fika Time)’은 스웨덴의 커피 브레이크 문화에서 영감을 받았다. 구성원들이 업무를 잠시 멈추고 함께 차를 마시며 편안하게 소통하는 시간이다. 휴게실에는 안마의자가 비치돼
있고, 점심시간도 여유롭게 확장했다. 이 모든 장치는 인간다운 일터를 향한 그의 집념이 만든 결과다.
뉴라이즌의 직원은 68명이며, 절반 이상이 대기업 혹은 중견기업 출신이다. 이들이 안정적인 대기업을 떠나 스타트업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급여는 솔직히 대기업 수준은 아닙니다. 하지만 일의 자율성과 존중을 보장하는 환경을 만들었어요. 좋은 분들을 모시기 위한 우리의 생존 전략이기도 했죠”라고 이승욱
대표는 설명한다.
대기업에서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수많은 보고와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때로는 의사결정이 너무 느려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반면 뉴라이즌에서는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빠르게 검토하고 실행에 옮긴다. 이런 민첩함이 대기업 출신 인재들을 끌어들이는 가장 큰 매력이었다.
조직문화는 철저히 수평적이다. 모든 구성원을 ‘○○님’으로 부르고, 대표와의 미팅도 수시로 가능하다. 직급이나 연차보다는 전문성과 역량이 존중받는다. 회의는 불필요하게 길지 않으며, 결재 라인은 간소화해 시간 소모를 최소로 줄였다.
뉴라이즌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민첩함(agility)과 신뢰다. 이 두 단어는 뉴라이즌의 성장과 조직운영을 관통하는 핵심 가치다. 민첩함은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력을 의미하고, 신뢰는 구성원 각자가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해서 각 부서 리더들이 상당한 권한을 갖고 있다. 예산 사용부터 인력
채용, 프로젝트 방향성까지 현장에서 직접 결정한다. 이런 신뢰가 쌓이면서 조직 전체의 주인의식도 높아졌다.
뉴라이즌은 반도체 클린룸 필터, 친환경 융합소재 등 차세대 정전필터 기술을 확보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특히 반도체 산업에서 뉴라이즌의 필터가 주목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국내 주요 메모리 반도체 기업의 경우, 뉴라이즌의 필터로 교체하면 200억 원의 초기 비용이 들지만, 연간 700억 원의 전력비를 절감할 수
있다. 이 대표는 “결국 기업이 실질적 이익을 보는 구조를 만들어야 시장이 움직입니다”라고 설명한다.
반도체 공정은 극도로 정밀한 환경을 요구한다. 미세한 먼지 하나도 수율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뉴라이즌의 필터는 초미세 입자까지 걸러내면서도 에너지 효율이 뛰어나다. 기존 필터 대비 전력 소비를 대폭 줄이면서도 성능은 오히려 향상시킨 것이다. 이는 기술력뿐만 아니라 현장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한
결과였다.
자동차 산업에서도 뉴라이즌의 입지는 단단하다. 회사는 이미 유럽의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의 협력사 벤더로 승인받았고, 미국의 대표적 전기차 제조사 등 글로벌 완성차 기업에도 필터를 공급할 준비를 마쳤다. 전기차 시대로 전환되면서 실내 공기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뉴라이즌의 고성능 필터는 이런 수요에
부합했다.
최근에는 새로운 시장으로도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AI와 데이터센터용 청정 인프라 시장이다. 데이터센터는 수많은 서버가 밀집돼 있어 먼지와 열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뉴라이즌은 이 분야에서도 자사의 청정 기술을 적용하며 ‘필터를 넘어 지속가능성을 설계하는 회사’로 진화하고 있다.
뉴라이즌의 연구 인력은 전체의 30%에 달한다. 68명의 조직에서 약 20명이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다. 더 놀라운 것은 설립 이후 연구개발 인력의 퇴사율이 ‘제로’라는 점이다. 그는 이를 가장 자랑스러운 성과로 꼽는다. “연구 인력은 회사의 자산입니다. 기술만큼 사람도 지켜야 하죠.”
연구자들이 떠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복지 때문만은 아니다. 뉴라이즌은 연구자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실험하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실패해도 비난받지 않고, 오히려 그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다. 이런 문화가 연구자들의 창의성을 끌어내고, 결국 회사의 기술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이승욱 대표의 최종 목표는 명확하다. “우리는 단순히 필터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기술 생태계를 만드는 기업입니다. 환경적으로, 조직적으로, 그리고 사람의 삶에서도 지속가능해야 진짜 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환경적 지속가능성은 제품을 통해 구현된다. 뉴라이즌의 필터는 에너지를 절감하고 탄소 배출을 줄인다. 조직적 지속가능성은 건강한 기업문화를 통해 실현된다. 구성원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어야 회사도 오래간다. 그리고 사람의 삶에서의 지속가능성은 일과 삶의 균형을 통해 완성된다.
뉴라이즌의 여정은 아직 진행형이다. “우리가 만든 이 작은 실험이 언젠가 글로벌 기업이 벤치마킹하는 모델이 되길 바랍니다.” 그의 말처럼, 뉴라이즌은 오늘도 기술과 사람이라는 두 축이 함께 자라나는 회사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부산에서 시작된 작은 도전이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그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