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통신
폭염은 더 이상 자연재해가 아니다
‘폭염 앞에 멈출 권리’
폭염은 더 이상 자연재해만이 아니다. 일터에서 사람을 쓰러뜨리는 산업재해다. 세계 각국은 기록적인 더위가 반복되는 시대에 맞춰, ‘버텨야 한다’는 관행을 법으로 깨고 있다. 나라마다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폭염 앞에서는 일을 잠시 멈춰도 괜찮다’는 공통의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다.
글. 편집실
자료. 연합뉴스, 한겨레
프랑스,
기상 경보와 연동된 사용자 의무
프랑스는 2025년 5월 27일 폭염 관련 노동법 시행령을 공포하고 7월 1일부터 시행했다. 이 시행령에 따라 사용자는 폭염 위험을 직업위험평가서에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 프랑스 기상청(METEO FRANCE)이 황색·주황색·적색 경보를 발령하면 사용자는 근무시간 조정, 작업 공정 변경, 차광·환기 시설 설치 등의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수돗물을 제공하기 어려운 현장에서는 1인당 하루 최소 3리터의 식수를 지급해야 하며, 고령자나 건강 취약 노동자에게는 별도의 맞춤 보호 조치가 적용된다.
독일,
실내 온도에 따른 3단계 조치
독일은 사업장 안전보건 시행령(ArbStattV)의 기술규정 ASR A3.5에 따라 실내 작업장의 온도별 대응 기준을 비교적 분명하게 정해 두고 있다.
실내 기온이 26도를 넘으면 환기, 차양, 복장 완화, 유연근무 같은 조치를 권고하고, 30도 이상에서는 이를 사용자가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 35도를 넘으면 해당 공간은 원칙적으로 작업에 부적합한 장소로 간주돼 근무를 지속하기 어렵다. 다만 냉방 설비나 열 차단 장치, 보호복 등 별도의 기술적 조치가 충분히 마련된 경우에는 예외가 인정된다.
권고, 의무, 작업 부적합으로 단계를 나눠 폭염 대응 수준을 명확히 했다는 점이 독일 제도의 특징이다.
일본,
WBGT 지표 기반의 정밀 관리
일본은 2025년 6월부터 개정된 「노동안전위생규칙」을 시행하며 폭염 대응 기준을 한층 구체화했다.
WBGT(습구흑구온도) 28도 이상 또는 기온 31도 이상의 환경에서 1시간 이상 연속 근무하거나 하루 4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경우를 ‘열사병 우려 작업’으로 본다. 사용자는 이때 관리감독자의 순시, 2인 1조 버디 시스템 운영, 이상 징후 보고 체계, 응급 대응 절차 마련 등 예방 조치를 갖춰야 한다.
단순히 더우면 쉬라는 수준이 아니라, 작업 전 교육과 현장 감시, 응급조치까지 제도화한 점이 특징이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6개월 이하 징역 또는 50만 엔 이하 벌금이 부과될 수 있어 제도의 실효성도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페인,
폭염 경보 발령 시 작업 제한
스페인은 2023년 왕령(Real Decreto-Ley) 개정을 통해 폭염에 노출되는 노동자 보호를 한층 강화했다.
기상청이 주황색 경보(37~40도) 또는 적색 경보(40~44도)를 발령하면 사용자는 즉시 위험을 줄이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하며, 상황에 따라 야외 작업을 제한하거나 근무시간을 조정·단축할 수 있다. 특히 건설·농업·환경미화처럼 햇볕에 직접 노출되는 직종에서 이 기준의 중요성이 크다.
2025년 여름 코르도바와 바르셀로나에서 노동자가 잇따라 숨진 뒤에는 현장 판단에만 맡기지 말고 폭염 경보와 연동한 작업 중지 기준을 더 엄격하게 운영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