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인터뷰
상상하는 모든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길
‘부캐’로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코미디언 김해준
쿨제이, 최준, 조정구, 김재홍, 김민준, 그리고 요즘 가장 사랑받는 ‘낭만부부’ 김기필까지. 코미디언 김해준이 만들어낸 얼굴은 여섯을 훌쩍 넘지만, 출처는 늘 한 사람이다. 그 많은 얼굴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정리. 하경헌 경향신문 기자
사진. 메타코미디 제공
여섯 개의 이름, 한 사람
출신지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 이 모든 인물은 알고 보면 다 코미디언 ‘김해준’이라는 한 명에서 비롯된 캐릭터들이다. 요즘 이러한 방식의 연기를 ‘부캐릭터’라고 한다. 연기자 본연의 캐릭터와 완전히 다른 인물들을 연기하는데 이 캐릭터가 적어도 작품 속에서는 모두 전혀 다른 인물로 여겨진다. 심지어는 연기자 스스로도 부캐릭터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는다.
김해준은 이러한 부캐릭터 연기 시대의 전성기를 열었고, 지금도 웃음의 많은 지분을 이 부캐릭터에서 뽑아내는 인물이다. 부캐릭터 연기를 하는 이들은 많지만, 그처럼 생활밀착형 부캐릭터를 연기하는 이도 많지 않다. 실제 땀과 노력으로 일궜던 그의 일생. 그 기록이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유튜브 채널 숏드라마로 인상을 남겼던 김해준을 두 달여 만에 다시 만났다.
“공신력이 있는 정부 부처의 유튜브 콘텐츠에 출연하게 돼, 조금 더 진지한 자세로 촬영해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하면서 신중하게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 가니 저를 섭외해주신 이유가 분명하다고 느꼈어요. 오히려 상황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내용 때문에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촬영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낭만부부, 그리고 오래된 캐릭터의 역사
어느새 2년이 돼가는 코미디TV의 ‘THE 맛있는 녀석들’과 함께 김해준의 모습은 다양한 매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그의 유튜브 채널 ‘김해준’에서는 60대 부부의 낭만 스토리 ‘낭만부부’의 영상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허세가 많고 꾸미는 일을 좋아하지만, 아내 나규리(나보람)에 대한 순정은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는 ‘청춘’ 김기필의 캐릭터로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낭만부부’의 인기로 더욱 바빠졌다.
그의 부캐릭터 김기필이 그의 2026년을 만들어주고 있지만, 사실 그의 부캐릭터 역사는 오래됐다. 2020년 코로나19가 대한민국에 밀어닥칠 당시, 비대면 콘텐츠이던 유튜브 콘텐츠들이 스케치(짧게 스쳐 가는 형식의) 코미디들에 집중했는데 그때 ‘쿨제이’와 ‘최준’, ‘조정구’ 등의 캐릭터가 나왔다. 그의 부캐릭터는 무척이나 상세한 직업이나 설정이 있고, 그에 맞춰 행동과 대사 역시 실제로 할 법한 자연스러운 것들로 가득하다.
관찰에서 태권도까지, 캐릭터의 뿌리
“제 직업의 특성 때문에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투 그리고 특징적인 모습들을 자주 관찰하게 돼요. 자연스럽게 제 기억에 남기는 편인데요. 매번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을 관찰하지는 않지만, 재미있거나 인상적인 부분들을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 같아요. ‘이 요소를 어떻게 콘텐츠에 접목하면 재미있을까’하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일단 흥미로운 캐릭터가 떠오르면 그 캐릭터를 어떤 상황에 넣을 것인지를 생각한다. 그런 과정에서 좀 더 구체적인 직업이나 설정을 부여한다. 이렇게 일상에서 작은 부분을 탐지한 캐릭터로부터 부캐릭터가 출발하고, 연기하면서 덧대어지는 이야기들과 새로운 설정으로 하나의 큰 콘텐츠로 몸집을 불린다. 이는 김해준에게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김해준은 태권도 선수 출신으로 6살 어린 시절부터 19살 고등학교 때까지 태권도 선수를 했다. 스무 살이 다 된 후 힘든 운동 때문에 진로에 대한 고민에 빠졌고, 결국 코미디언이 되기 위해 연극영상 전공을 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6~7년 정도의 무명 생활도 있었는데 당시 옷가게와 가구점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의 경험을 쌓았다. 그에게 노동은 삶을 이어가기 위한 필수 요소였고, 그 과정을 통해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명제도 깨달았다.
여섯 개의 얼굴을 만든 건 재능이 아니라,
그가 직접 살아낸 시간이었다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쌓인 경험, 그리고 창작의 무게
“젊은 시절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일을 경험하면서 보낸 시간이 지금 저에게 큰 자산이 됐다고 생각해요. 제게는 모든 과정이 소중한 공부였습니다. 비록 모든 경험이 콘텐츠로 직접 연결되지 않았지만, 코미디언이자 한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쌓은 수많은 경험과 인간관계가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긴 무명의 시간만큼이나 창작자에게는 다양한 고뇌가 따른다. 특히 웃음의 감정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은 눈물이나 분노를 전하기보다 훨씬 어렵다. 그래서 은근히 많은 코미디언들이 실제 캐릭터보다 조용한 성격을 갖고 있고, 의외로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이들도 많다.
“무리하게 결과를 만들려고 애쓰기보다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일상 속 작은 여유도 즐기고, 평소 하던 대로 하다 보면 자연스레 아이디어도, 보이지 않던 길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건강한 일터를 향한 마음
태권도라는 꿈과 결별해야 했던 아픔, 코미디언이 되기 위해 겪었던 무명의 시간. 지금도 그를 뒤쫓는 창작의 부담은 자리를 잡고 성공 가도를 달리는 이에게도 늘 아픔이 있음을 보여준다. 김해준은 특히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일자리가 없어 불안한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도 많다.
“저 역시 그런 시간이 많았는데요. 지나고 보니 속도가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지금 하는 경험과 노력이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언젠가 분명히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면 건강하고 행복한 일터로 향할 수 있을 거예요. 서로를 존중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곳이요. 힘든 순간에 서로 위로하고, 기쁜 순간에는 함께 기뻐하며, 필요할 때 기댈 수 있는 동료들이 있는 곳. 그런 따뜻한 관계가 건강하고 행복한 일터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2024년 10월 선배이자 동료인 개그우먼 김승혜와 결혼해 곧 딸의 아빠가 될 김해준은 <월간 내일> 독자들에게도 인사를 전했다.
“유튜브로 만났던 좋은 인연이 이렇게 인터뷰로 이어져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더 유쾌하고 건강한 콘텐츠, 좋은 방송을 통해 자주 찾아뵐게요. 저는 ‘상상하는 모든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길’이라는 문장을 좋아하는데요. <월간 내일> 독자 여러분의 즐겁고 행복한 상상이 올 한 해 모두 현실로 이뤄지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