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일여행

바람과 바다가 그리는 풍경

풍차가 있는 제주

센 바닷바람을 안고 천천히 도는 하얀 풍차들이 가장 청량한 풍경을 빚어내는 계절. 한때 농사조차 어려웠다던 척박한 바람의 땅이 이제 신재생에너지의 무대이자 여름 여행자들의 새로운 인생샷 명소가 됐다. 바람개비가 그리는 제주의 풍경 속으로.

글. 송송이  사진 제공. 남윤중, 한국관광공사

동쪽 구좌읍 행원리,
에메랄드빛 바다 위 하얀 거인

해맞이해안로를 따라 동쪽 끝으로 달리는 드라이브는 그 자체로 청량음료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거대한 풍차들이 줄지어 선 마을이 나타나는 곳, 바로 구좌읍 행원리. 1998년 8월 국내 최초로 상업용 풍력발전이 시작된 한국 풍력 산업의 발상지로, 사계절 바람이 너무 세서 농사조차 어려웠던 척박한 마을이 그 바람 덕분에 ‘바람을 파는 마을’이라는 별명을 얻은 곳이다. 한여름 햇살 아래 돌아가는 풍차 날개의 그림자가 에메랄드빛 월정 바다 위로 길게 드리워지면 무더위마저 잠시 잊게 된다.

바로 옆에는 제주에너지공사가 운영하는 제주에너지누리마당(구. CFI에너지미래관)이 있어 한낮 더위를 식히기에도 제격이다. 무료 입장이며 사전 예약 후 방문하면 된다. 산업혁명관 터널을 지나 기후위기관, 신재생에너지 체험관까지 시원한 실내에서 알차게 즐길 수 있다. 다만 토·일요일은 휴관이니 미리 확인하고 발길을 옮기자.

바람은 늘 제주의 풍경을 바꾼다
보이지 않지만
가장 선명하게 남는 감각이다
여름의 제주는 그 바람으로
더 푸르게 빛난다

서쪽 신창풍차해안도로,
한여름 노을이 머무는 바다 위 풍차

차를 서쪽으로 돌려 한경면으로 향하면 풍경의 결이 완전히 달라진다. 신창풍차해안도로는 제주에서 가장 이국적인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히는 곳. 행원의 풍차가 ‘육지의 거인’이라면, 신창의 풍차는 ‘바다 위를 걷는 거인’이다. 해안선을 따라 바다 한가운데로 줄지어 선 해상풍력발전기들이 한국이 아닌 네덜란드나 덴마크의 어느 해안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길의 진짜 클라이맥스는 단연 일몰. 해가 가장 길어지는 한여름엔 저녁 7시 30분까지 풍차와 노을이 함께 어우러지는 황금빛 시간이 펼쳐진다. 싱계물공원에 차를 세우고 용수 해안 라인을 따라 걷다 보면, 차귀도와 수월봉을 배경으로 하늘이 붉게 물들고 풍차 날개가 그 노을을 천천히 가른다. 해풍에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사이 야자수와 현무암 돌담길 너머로 펼쳐지는 풍차의 실루엣은 여름 제주만이 줄 수 있는 비현실적인 한 컷이다.

북동부해안 행원풍력발전단지

신창풍차해안도로

중산간 가시리,
초록 들판과 풍차가 어우러진 청량 화첩

해안을 떠나 중산간으로 올라가면 또 다른 풍경이 기다린다. 표선면 가시리 풍력발전단지는 ‘마을이 주인이 된 풍력’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마을 공동목장 부지에 세워진 국내 최초의 국산화·주민참여형 풍력단지로 풍력발전기가 힘차게 돌아가며 만들어낸 수익의 일부가 임대료와 발전기금 형태로 마을에 돌아온다. 풍차 한 기 한 기마다 마을의 이야기가 깃든 셈이다.

한여름의 가시리는 풍경 자체가 한 폭의 청량 화첩이다. 봄날 유채꽃이 떠난 자리엔 무릎까지 차오른 짙푸른 초원이 펼쳐지고, 따라비오름·모지오름·번널오름이 둥글게 솟아 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녹산로를 따라 한라산을 배경 삼아 풀을 뜯는 조랑말과 소, 그리고 천천히 돌아가는 하얀 풍차가 어우러진다. 해발이 높아 해안보다 한층 선선한 바람이 부는 것도 한여름 여행자에게는 큰 매력이다.

신창풍차해안도로

가시리국산화풍력발전단지

남쪽 가파도,
한여름 바람이 가장 시원하게 부는 작은 섬

마지막 여정은 운진항에서 배로 약 10분, 우리나라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낮은 섬 가파도다. 봄날 청보리가 떠난 여름의 가파도는 더 깊은 초록과 더 푸른 바다, 그리고 사방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해풍이 주인공이다. 2011년부터 추진된 ‘카본프리 아일랜드’ 사업의 무대였던 가파도는 신재생에너지로 섬 전체 전력을 자급하겠다는 제주의 꿈이 처음 발을 디딘 곳이기도 하다.

자전거를 빌려 섬을 한 바퀴 도는 데 한 시간이면 충분하니 한여름에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코스다. 낮은 지붕의 돌담집과 그 너머 멀리 산방산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 속을 달리다 보면 도시의 열기가 거짓말처럼 흩어진다.

바람은 제주의
오래된 자연이자
가장 새로운 자원이다
이 섬은 푸른 풍경 위에서
미래 에너지의 방향을
누구보다 먼저
실험하고 있다

가시리국산화풍력발전단지

가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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