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의 열정지수

주어진 ‘시간’을 다시 ‘삶’으로

주 4.5일제로 일하는 방식을 바꾼 (주)에코월드팜

금요일 낮, 담양 에코산업단지의 한 공장이 한 주의 일과를 마무리한다. ㈜에코월드팜이 주 4.5일제 시범운영을 시작하면서 생긴 풍경이다. 근무시간은 줄었지만 생산량은 오히려 늘었다. 회사가 주목한 것은 ‘얼마나 덜 일할 것인가’보다 ‘일하는 과정에서 놓치고 있던 시간은 없는가’였다.

글. 차유미 사진. 박충렬

임금보다 먼저 생각한 ‘시간’

2012년 전남 담양 에코산업단지에 자리 잡은 에코월드팜은 구강청결제 등 의약외품과 화장품, 기능성 식품을 개발·생산하는 50인 규모의 제조기업이다. 주력 구강청결제는 일본 유수의 드럭스토어 전체 판매 순위에서 1위를 기록했고, 브로콜리 새싹에서 설포라판을 고순도로 추출하는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메디푸드 분야의 제품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직원 대부분이 광주와 인근 시·군에서 출퇴근하는 만큼 담양이라는 위치는 채용과 근속을 고민할 때 고려해야 할 조건이었다. 임금만으로 광주권이나 수도권 기업과 경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회사가 선택한 것은 ‘시간’이었다. 매주 반나절을 직원에게 돌려주는 것이 긴 통근에서 오는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오석중 대표는 회사의 경영철학을 ‘지속가능한 발전’이라고 설명했다.

“성장을 몰아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회사와 직원이 함께 오래 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는 뜻입니다. 직원이 만족하고 행복해야 업무 능률이 오르고, 그것이 결국 생산량과 실적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행복이 먼저이고 성과는 그 결과라는 쪽입니다.”

2026년 고용노동부·노사발전재단의 워라밸+4.5 프로젝트와 일터혁신 상생컨설팅도 제도 설계에 힘을 보탰다. 채용 공고에 주 4.5일제 시행을 명시한 뒤에는 근무 조건을 보고 지원을 결심하는 구직자도 늘었다. 올해 5월 입사한 마케팅 담당자 역시 제도 도입 예정이라는 점이 입사 결정에 영향을 줬다고 전했다.

행복이 먼저이고, 성과는 그 결과다
회사가 오래 가려면 사람이 오래 남아야 하고,
사람이 오래 남으려면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삶을 소모하지 않아야 한다

시간을 줄이기 전에 업무부터 살폈다

주 4.5일제 시행에 앞서 회사는 부서별 업무부터 들여다봤다. 직원들이 자신의 핵심업무와 시간이 많이 드는 업무, 줄일 수 있는 업무를 자가진단표에 적고 이를 팀 단위로 모아 분석했다.

조영직 인사혁신팀장은 “시간을 줄이겠다고 먼저 선언하지 않고 부서별로 업무를 분해하는 작업부터 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부서마다 병목도 달랐다. 생산 부문에서는 작업의 시작과 종료 시각을 다시 정하고 라인 셋업과 CIP 세척 등 준비·마무리 작업의 배치를 조정했다. 생산관리와 물류는 주간 회의와 출고·발주 일정을 앞당겼고, 사무·관리 부문에서는 반복 입력과 집계 업무를 자동화 대상으로 정했다.

주 4.5일제는 2026년 6월 1일부터 1년간 시범운영 중이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금요일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12시 30분까지 근무한다. 주 소정근로시간은 36시간이며 임금은 줄이지 않았다. 금요일 연차는 4시간, 반차는 2시간으로 계산하도록 취업규칙도 정비했다.

제도 시행 과정에서는 근로자대표를 선출하고 노사 합의를 거쳐 취업규칙을 개정·신고했다. 조 팀장은 “제도를 바꿀 때는 먼저 알리고 협의한 뒤 시행한다는 원칙을 지키려고 했습니다”라며 직원들에게 결정 과정과 근거를 함께 알렸다고 설명했다.

줄어든 시간, 달라진 일하는 방식

변화는 생산 현장에서 수치로 나타났다. 시행 전인 1~5월과 시행 후인 6~8월을 비교한 결과 시간당 생산량이 10% 이상 늘었다.

생산 과정에서 조금씩 흘러가던 시간을 다시 살핀 결과였다. 작업의 시작과 종료 기준을 정하고 준비와 마무리 작업의 순서를 조정하면서 업무 과정의 작은 손실을 줄였다. 회사는 이를 “없던 시간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동안 흘려보내던 시간을 되찾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직원들의 일상에도 변화가 있었다. 시행 이후 연차 사용은 절반 이상 줄었다. 병원이나 관공서, 은행 업무처럼 평일 낮에 처리해야 했던 일을 금요일 오후에 할 수 있게 되면서다. 남은 연차를 여행이나 휴식에 사용할 수 있게 된 것도 달라진 점이다.

근로시간 단축과 함께 회사가 선택한 도구는 AI였다. 주 4시간을 줄이면서 임금과 생산량을 유지하려면 업무 방식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도입 전 사용 실태를 익명으로 조사한 뒤 전 직원의 AI 구독료를 전액 지원했다.

부서별 활용 방식도 달랐다. 생산 부문은 라인별 수기 집계를 자동화하는 생산실적 통합관리 시스템을 직접 개발했고, 생산관리는 203개 제품의 배합비를 바탕으로 원료 소요량과 발주량을 자동 산출한다. 품질은 제품 사진 비교·분석으로 불량 여부를 살피고, 물류는 택배 관리 업무를 자동화했다. 마케팅과 인사 부문에서도 생성형 AI를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다만 기술자료와 계약, 4대 보험, 자금 출납 등 민감한 정보를 다루는 부서는 AI 활용을 제한하고 있다. 데이터 등급과 보안 체계를 마련한 뒤 활용 범위도 넓힐 계획이다.

오래 일할 수 있는 일터를 향해

주 4.5일제 시범운영은 2027년 5월까지 이어진다. 에코월드팜은 부서별 지표를 종합해 정식 제도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며 생산설비 보강, AI 활용 확대, 데이터 관리와 보안 체계 마련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오 대표가 그리는 일터의 방향은 분명하다.

“담양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손해 보지 않는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지방 산업단지의 제조기업이라는 조건은 바꿀 수 없지만, 그 조건 때문에 좋은 사람이 오지 않거나 오래 머물지 못하는 상황은 바꿀 수 있다고 봅니다.”

매주 돌아오는 금요일 오후는 그 생각을 실천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금요일 오후를 가족과 보내거나 자기 계발에 쓰고, 일하면서 흘려보내던 시간을 다시 업무에 돌려놓는 것. 에코월드팜의 주 4.5일제는 근무시간을 줄이는 데서 끝나지 않고, 일과 삶에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다시 나눌 것인가를 묻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주 4.5일제는 복지만이 아니라 업무구조의
전환이다. 흘려보내던 시간을 되찾고
더 단순하게 일하는 방식이
회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힘이 된다

일터의 열정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