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목소리

제14차 아세안+3 노동장관회의

사람을 위한 기술, 존엄을 지키는 노동

8월 27일 태국 방콕의 두짓타니 호텔에 아세안 11개국과 한국·중국·일본의 노동장관들이 모였다. 대한민국 수석대표로 참석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 자리에서 ‘노동 있는 산업 대전환’을 대한민국의 답으로 내놓았다.

김영훈 장관 연설 바로보기
글. 편집실  자료·사진. 고용노동부

방콕에서 만난 아시아, 의제는 ‘전환의 파고’

올해로 14차를 맞은 이번 회의는 2년마다 열리는 아세안+3 노동장관회의로 ‘아세안 인적자원 발전: 글로벌 인정을 향한 역량 인증’을 주제로 열렸다. 인공지능(AI)의 확산과 탄소중립 이행으로 일자리 지형이 빠르게 변하는 가운데, 아시아 각국의 노동정책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변화에 대응할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회의는 오전 9시부터 세 시간 반 동안 이어졌다. 개회 인사에 이어 각국 대표의 주제 연설, 공동선언문 채택 순으로 진행됐다. 태국이 의장국을 맡았고, 다음 회의의 의장국은 동티모르로 정해졌다. 이번 회의의 주요 의제는 AI를 비롯한 디지털 전환과 탄소중립 이행에 따른 녹색 전환이다. AI가 단순·반복 업무를 대체하면서 신규 채용이 줄어들고, 청년 등 취약계층이 먼저 영향을 받고 있다. 자동차·철강 등 고탄소 업종의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격은 해당 업종을 넘어 지역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경과 언어는 달라도 각국이 마주한 과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공통의 과제를 놓고 해법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이번 회의의 의미가 컸다.

“‌모두가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나라”

김영훈 장관은 수석대표 연설에서 “모두가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나라”를 고용노동정책의 비전으로 제시하며 ‘노동 있는 산업 대전환’을 상세히 설명했다. 골자는 세 갈래다. 첫째, 「산업전환 고용안정 기본계획」이다. 고용 영향 모니터링, AI 활용 능력을 키우는 직업훈련과 평생학습 강화, 중장년 전직 지원을 아우르는 큰 틀이다. 둘째, 청년이 원하는 일자리다. 첫 취업 지원과 기업 주도 현장훈련을 확대하고, 정부업무·사회서비스·중소기업 AI 코치 같은 공공 일자리를 새로 발굴한다. 셋째, 중장년의 재출발이다. 산업전환 특화훈련과 일 경험, 취업 알선을 통합한 재취업 지원 서비스를 넓힌다.

인적자원 개발에 관한 대목에서 김장관의 말은 구체적이었다. “AI 분야에서는 내일배움카드를 통한 K-디지털 트레이닝 지원으로 즉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실무 인재 1만 명을 양성할 계획이며, 전 국민이 시공간 제약 없이 교육받을 수 있는 온라인 스마트직업훈련플랫폼(STEP)을 구축해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AI 활용 능력이 향상되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훈련만으로는 취업에 닿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대한민국은 국가직무능력표준(NCS) 1,100여 개를 개발·보급해 능력 인증의 표준을 세우고, 직업훈련과 일자리 매칭을 한 창구로 잇는 ‘고용24’를 통해 통합 경력 증명서 발급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포용의 축도 놓치지 않았다. 전 국민 고용보험을 향한 첫걸음으로 보험 적용 기준을 노동시간이 아니라 소득 중심으로 개편하고 있다고 밝혔고, 110만 명을 넘어선 이주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외국인 인권리더 지정과 현장 모니터링, 사업장 지도·감독 강화를 추진하고 있음을 알렸다.

공동선언과 양자회담, 태국의 K-청년들

수석대표들은 논의 결과를 담아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양질의 완전고용, 녹색 및 디지털 기술을 포함한 인적자원 개발,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인 사회보장제도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뜻을 모았고, 직업훈련과 노동시장 정보, 일의 미래에 대한 대한민국의 지속적인 지지에 감사가 명문화됐다. 김 장관은 “아세안의 감사 표명을 뜻깊게 생각하며 앞으로도 아세안과의 교류를 확대하는 등 긴밀한 연대를 이어 가겠다”라고 화답했다.

회의 앞뒤로는 양자회담이 촘촘하게 이어졌다. 태국 노동부 줄라판 아몬위왓 장관과는 AI 관련 고용·직업훈련 정책과 고용허가제 협조 방안을, 일본 후생노동성 우에노 겐이치로 장관과는 정년 연장에 관한 사회적 대화 방안을 나눴다. 국제노동기구(ILO) 질베르 웅보 사무총장과는 ILO의 주요 고용노동 의제 추진 현황과 한-ILO 협조 방안을 짚었다. 관통하는 주제는 하나였다. 전환의 파고 앞에서 사람을 지키는 노동의 지도를 어떻게 그릴 것인가.

일정의 마지막 날인 8월 28일에는 태국 현지에 취업한 한국 청년들과의 간담회가 열렸다. 장관은 첫 취업 지원을 위한 ‘K-유스개런티’와 ‘(가칭) 플레이그라운드’ 같은 새로운 청년 정책, 해외 취업을 돕는 ‘K-무브 스쿨’, 국내 재취업 지원 등을 소개했다. 아세안이라는 큰 지도 위에서 열린 회의가, 방콕의 한 방에서 대한민국 청년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장면이었다.

“사람을 위한 기술, 존엄을 지키는 노동, 그리고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미래를 향한 진짜 성장을 함께 이루어 나가겠습니다.”

태국 K-청년 간담회

아세안+3, 함께 묻고 함께 답하기

한국은 아세안과 오랜 시간 협력의 뿌리를 키워 왔다. 2025년 기준 아세안 국가를 대상으로 1조 원(약 7억 달러) 규모의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1,100여 개가 운영되고 있으며, 그중 인적자원 개발을 위한 고용노동 분야 ODA는 350억 원(약 2,440만 달러) 규모로 80여 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2013년부터 매년 개최해 온 아세안+3 인적자원개발(HRD) 포럼도 협력의 상징이다. 올해 11월에는 한중일이 3:3:3:1 비율로 조성해 아세안 사무국과 함께 운영하는 APT 기금을 활용해 포럼이 다시 열린다.

인적 교류의 흐름도 두터워지고 있다. 2026년 현재 국내 노동시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110만 명을 넘어섰고, 이들 상당수가 아세안 국가 출신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의 국적이 겹칠수록 정책의 대화도 촘촘해질 수밖에 없다.

김영훈 장관은 연설을 마무리하며 “여기 모인 여러 나라가 각각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우리 모두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전환의 과정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함께 묻고 함께 답을 찾아야 합니다”고 말했다.

방콕에서 채택된 공동선언문은 한 장의 종이지만 그 안에는 14개국 노동시장이 안고 있는 현실과 고민이 담겨 있다. 대한민국이 제시한 ‘노동 있는 산업 대전환’도 그 논의의 한 축을 이뤘다. 다음 회의가 열리는 동티모르에서는 이번 논의가 각국의 정책과 현장에서 어떤 모습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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