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온도

나 너 그리고 우리의 노동

새 직장에 적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출근길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엉뚱한 길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긴장해서 도착한 새 일터. 업무도 낯설지만, 새로운 사람들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몸에 익히는 일도 쉽지 않다. 저마다 중요시하는 가치와 규율부터 다르다. 끈끈한 전우애를 중시하는 집단이 있는가 하면, 사적 대화를 매우 어색해하는 곳도 있다. 새 직장이 전과 같은 업종이라 하더라도 그곳의 리더나 동료에 따라 분위기는 또 달라지곤 한다. 일도 사람도 분위기도 모두 어려워진다. 그러니 다니고 있는 직장이 정말이지 내게 지옥 같은 곳이 아니라면 굳이 옮기려 하지 말고 되도록 한 곳에서 오래 다니는 것이 좋다. 경제적 여건도 안정되면서 몸과 맘의 건강도 지키는 길이다. 허구한 날 직장을 옮겨 다닌 내가 할 수 있는 조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직장을 바꾸면 눈에 보이는 세상 또한 살짝 달라진다. 예를 들어 거리의 풍경을 바라볼 때 무엇을 먼저 보게 되나? 택배기사로 일할 때 거리의 풍경에서 가장 먼저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파트 벽면에 쓰인 동 번호였다. 아파트의 동 번호를 이정표로 삼아 배달하는 습관이 몸에 밴 것이다. 솔직히 그 전엔 아파트의 벽면에 동 번호가 쓰여있다는 사실을 아예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그걸 눈에 담고 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나.

배관공으로 일한 이후로는 안팎에 설치된 파이프의 흐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요즘은 카페나 식당 같은 곳 천정에 텍스*를 사용치 않고 천정을 보이는 그대로 노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곳에선 가만히 앉아 고개를 들고 천정의 배관 흐름을 쳐다보며 음식을 기다리게 된다. 용접 관련된 일을 할 땐 쇠만 보면 용접 포인트가 눈에 띄었다. 철재로 만들어진 모든 물건의 용접 부위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난간손잡이, 옥상으로 오르는 사다리, 의자와 책상의 접합부까지 괜히 눈이 간다. 세탁공장에서 일할 때는 골목 곳곳에 있는 세탁물 수거 체인점이 이상하게 먼저 눈에 띄었고, 축사 정비공으로 일할 당시엔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지날 때마다 원뿔 모양의 사료 탑이 항상 눈에 꽂혔다.

시설관리원으로 일을 하는 지금은 자연스레 건물의 주요 시설들이 먼저 보이기 시작한다. 화장실 변기는 바닥과 잘 연결이 되어 있는지, 수도꼭지는 정상인지, 온수는 잘 나오는지, 형광등과 같은 전등은 상태가 어떤지 이런 것들이 신경이 쓰인다. 이렇듯 새 직장을 얻는 것은, 또 다른 각도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렇게 보면 하나의 노동을 이해하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의 눈은 세상을 2차원의 평면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실상의 세계는 3차원의 세계인 것이다. 세상을 보는 시점을 조금만 옮겨보아도 우리 인식은 원근을 습득하고 깊이를 이해하게 된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내가 선 자리의 시각만 고집하지 않고, 타인이 선 자리의 시선을 상상해 본다면 어떨까? 같은 세상이지만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덤으로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게 되고, 자연스레 친절과 배려를 몸에 익힐 수도 있을 것이다.

나 너 그리고 우리 사이의 원근을 이해하고 관계의 깊이가 더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다양한 직업에 대해 탐색하고 그 노동에 대하여 알아보는 것은 비단 학교의 진로 교육 시간이나 취업을 앞둔 청년에게만 유용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서로의 노동을 사유해 보는 작업은 세계의 다양성에 익숙해지는 과정이고, 인류의 바람직한 미래를 구상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 아닐까? 너무 거창한가?

바쁜 일상에 시달리다 보면 내 주위의 사람이 실체인가 그림자인가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속에서는 바람직한 공동체가 형성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단절 속에서 인류의 문화와 역사가 과연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을까?

자, 한번 쳐다보자. 지금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는 누군가를. 그리고 상상해 보자.

그의 삶을. 이토록 재미있고 더군다나 의미 있는 여행이 또 어디 있겠는가.

* 텍스 : 목재나 짚, 수수대 등의 식물성재료를 분쇄하여 섬유화한 뒤, 일정 규격으로 압축시켜 만든 제품

꿈꾸는 배관공 양성민

양성민 작가는 조선소와 건설 현장, 공장을 오가며 일용직과 단기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배관기능사, 용접기능사, 특수용접기능사 자격증이 있지만 현장에서는 대부분 보조공으로 뛰었다. 최근 <인생여전>을 발간했으며, 자전적 기록 <꿈꾸는 배관공>이 제32회 전태일문학상 르포 부문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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