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인터뷰
구슬땀 어린 노력으로 정직하게
제 몫을 해낸 보람이
진정한 노동의 가치
청년 도배사·작가 배윤슬 씨
공들인 손길로 새로운 벽지를 얹는다. 풀 먹인 자리마다 부드럽게 쓸어 재차 가다듬으면 삭막했던 벽이 마치 갓 세안한 얼굴인 양 맑고 환해진다. 이른 나이에 건설 현장에서 작업하기 시작해 어느새 활동 7년 차인 청년 도배사이자 작가 배윤슬 씨가 구슬땀 어린 노동에서 가치와 보람을 찾을 수 있었던 이유다.
정리. 오민영
사진. 오충근
활동 7년 차에 비로소 깊이 들여다보기 시작한 도배라는 업(業)
우리나라에 도배사가 한둘이 아니라지만, ‘청년 도배사’라고 하면 자연스레 그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바로 지난 2021년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널리 주목받은 배윤슬 씨다. 당시 활동 2년 차였던 윤슬 씨가 화제를 모은 배경에는 연세대학교 졸업이라는 학력뿐 아니라 이른 나이에 과감히 기술직을 선택한 시도가 있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현재, 역량은 더욱 강화했고 활약 중인 범위는 한층 넓어졌다.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동반장을 맡아 수백 세대의 마감을 책임지면서 내공이 깊어진 데다 2025년 5월엔 개인사업자 등록까지 마친, 어엿한 대표로 거듭났다.
“초창기엔 기술자로서 바로 서기 위한 과정에 몰두했다면 지금은 도배라는 업(業) 자체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자 해요. 함께하는 도배사 간 상호작용이나 분위기, 거래 업체와의 관계 등을 고민하며 주위를 살필 정도로 성장한 셈이에요.(웃음)”
20~30대 직원 6명과 한 팀으로 서울・경기 지역 현장을 누빈다고 전한 윤슬 씨는 언제나 정직과 성실성이 최우선이다. 기술과 수익 측면에서 더 뛰어난 업체가 있겠지만, 모든 절차에 있어서 항상 올바르게, 제대로 작업하려 한다는 자부심이 자못 아름답다.
SNS로 공유한 청년 도배사의 일상이 자아낸 공감대
사실 윤슬 씨를 알린 매체는 TV나 라디오와 같은 방송보다도 SNS가 먼저였다. 기존에 해오던 사회복지사를 그만두고 2019년 10월 도배사라는 직업에 처음 도전했을 땐, 도무지 참고할 수 있는 콘텐츠가 없어 백지와 같은 상태로 무작정 뛰어들었단다.
“한마디로 전혀 모르는 채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 들어섰는데 제겐 신세계더라고요.(웃음) 이전엔 접해보지 못한 현장이 그저 신기해서 인스타그램에 일기처럼 일상을 올렸어요. 작업 시 옷차림부터 일당, 오늘 해낸 작업 등을 솔직하게 기록하던 중에 다소 호응이 뒤따라 출판사에서 출판 제의까지 왔죠.”
솔직 담백하게 공개한 일상은 2021년 저서 <청년 도배사 이야기>로 세상에 나왔다. 동시에, 그를 중심으로 누구나 선망하는 직업이 아닌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고자 하는 청년세대의 공감대가 형성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오늘날 도배사를 비롯한 기술직에 관한 사회적 시각과 가치관은 과거와는 상당히 달라졌다. 이러한 변화에 관해 윤슬 씨는 겸허한 태도를 견지한다.
“제가 어떤 영향을 주었다기보다는 세상이 신속하게 바뀌면서 다양한 분야가 새로이 주목받거나 사라지는 가운데 평생 직업은 없다는 인식이 공감을 얻었다고 생각해요. 저와 같이 일하는 팀엔 나이 차이가 10살이나 나는 어린 친구가 있는데 무슨 작업이든 열심히 하는 열정에 오히려 제가 신선한 자극을 많이 받아요. 더 잘해야겠다는 열의를 북돋우기도 하고요.”
자신의 길을 단단히 걸어가는 한 청년의
뒷모습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또 다른
청춘들에게 다정한 용기가 된다
체력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는 흔들리지 않는 각오
그런데 수많은 직업 중 어째서 도배사였을까. 한곳에 머무르기보다는 여러 현장에서 기술을 펼치고 싶었다고 밝힌 윤슬 씨는 인테리어 현장직에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해당 영역의 주요 업종인 목공, 페인트, 도배, 필름 등을 고심하다가 상대적으로 기운이 부치거나 작업 건수가 별로 없는 분야는 제외하다 보니 도배로 정했다는 후문이다. 이사하면 도배는 새로 해야 하기에 일거리 또한 적지 않다는 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고 덧붙이는 그의 입가에 밝은 미소가 떠오른다.
물론 현장 기술직인 만큼 작업은 고되다. 그런데 또 다른 난관이 있으니, 어떤 상황에서든 흔들리지 않을 각오가 필수다. 다른 직업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도배사를 하고 싶다면 반드시 고민해야 할 사항이다.
“처음 배우는 시기엔 현장에서 나오는 폐기물 수거부터 해야 하죠. 벽지 붙이고 잘 메우는 등의 기술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익혀나갑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청소만 하다 보면 지치는데 보수가 의외로 적고 ‘대체 여기서 뭐 하고 있나?’ 싶은 회의감이 들 수 있어요.”
분명한 다짐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단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술직을 고려하는 청년층에게 그의 가감 없는 조언은 비록 맛이 쓸지라도 더없이 좋은 약이라 할 수 있다. 조언을 딛고 일어선 청년 가운데 윤슬 씨와 함께 일하며 서로 지지해 주는 도배사로 성장한 사례 또한 있기에 더욱 그렇다.
역량과 노하우를 널리 나누고 싶은 진심
베테랑 도배사이자 작가이면서 청년을 위한 강연에도 나서고 있는 배윤슬 씨의 활동 범주는 나날이 확장하고 있다. 도배사로서 현장에서 보내는 시간은 보람을 느끼는 데서 나아가 노동의 가치를 체감할 수 있는 기회이다. 열심히 일한 만큼 자신의 생계가 문제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근간이면서, 나아가 사회에 제공하는 값진 근로이기도 하다.
“단지 도배뿐 아니라 사업과 강의, 집필 등이 다 매한가지예요. 어디선가 필요로 해서 제게 시간과 비용을 들였다면 가진 역량 안에서 가장 좋은 성과를 내야 마땅하잖아요. 그렇기에 언제나 초심으로 한결같이 진정성을 담아 활동하고자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윤슬 씨는 삶에 있어 목표가 늘 원하는 대로 이뤄지진 않은 듯하다며 웃음 짓는다. 사회복지사에서 도배사로 업을 전환하던 시기나 사업을 시작할 때 역시 그랬단다. 다만 나름의 명확한 열의는 있다.
“도배를 평생 할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점은 어떤 업에 있든 제가 가진 역량과 노하우를 주위, 그리고 사회와 나누고 싶어요. 사업하면서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꾸준히 기술을 전수해야죠. 현장이 알고 싶은 청년 세대에겐 앞서 겪은 경험을 전하며 선순환에 이바지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