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인터뷰

서정과 실용의 만남,
순간에 머물지 않는다

뮤지션 페퍼톤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는 단순한 하나의 기능을 잘해서는 적응하기 어려운 곳이 됐다.
모든 일을 두루두루 하면서도 일정 부분 성과를 내는 인재의 존재가 중요하다.
서로 극단적으로 달라 보이는 부분도 각각의 장점을 취합하고, 단점을 소거하는 방식으로 뭉쳐내는
‘융합형 인재’가 필요하다. 대표곡 ‘행운을 빌어요’, 예능 프로그램 ‘문제적 남자’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2인조 밴드 ‘페퍼톤스(Peppertones)’는 이러한 융합형 인재를 표현할 때
연예계에서 가장 먼저 손꼽히는 아티스트가 아닐까.

글. 하경헌 경향신문 기자 
사진. 안테나

신재평, 이장원은 각자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의 전산학과를 전공한 빼어난 공학 인재이면서도, 이들은 누구나 기억하는 재기 넘치는 밴드 페퍼톤스를 결성해 음악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들의 능력과 열정은 순간에 머물러 있지 않다. 빼어난 능력과 융합력을 갖고 끊임없이 창조에 대한 열정과 끈기로 음악활동을 마침내 20년째 이어왔다. 지난해 20주년 앨범 발매와 공연으로 팬들과 성과를 기념했으며, 올해 또 한 번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신재평

“요즘 20주년 활동을 지난해 마치고, 소소한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최근에는 페스티벌 출연 준비를 하고 있어요. 20년 동안 빠짐없이 무대로 팬분들을 만나 왔어서, 그런 일을 계획하고 해나가고 있습니다.”

이장원

“지난해는 저희가 자축의 앨범을 내고 20주년의 이야기를 하고, 되짚었던 한 해였어요. 연말까지 공연을 하고 나니 좀 더 홀가분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었죠. 올해도 감사하게 여러 제안이 있습니다. 좀 있으면 저희 공연을 담은 영화도 나오고요. 개그우먼 조혜련 씨와 함께하는 ‘메커니즘’이라는 유닛그룹 활동도 계획 중입니다.”

카이스트 전산학과 99학번 동기인 두 사람은 원래부터 음악에 관심이 있는, 어딘가 ‘색다른’ 공부벌레였다. 신재평은 경기과학고 시절부터 야간자습을 빼먹고 나가 서울 홍대 클럽에서 공연을 보러 다녔고, 카이스트의 하드록 동아리 ‘강적’에서 활동했다. 대전과학고에서 천문동아리 활동을 하던 이장원은 카이스트 진학 후 통기타 동아리 ‘여섯 줄’에서 활동했다.

신재평

“음악을 포함한 예술은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즐길 수 있는 일이죠. 과학자들도 오락적인 취미는 하나씩 있었어요. 어떤 전공을 갖든 음악은 보편적인 오락성을 갖고 있죠. 저희도 당연히 음악이 좋아서 시작했고, 계속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지금의 저희를 만들었습니다.”

색다른 공부벌레인 두 사람이
음악으로 뭉치게 된 것은
'필연'이었다.

이장원

“저희는 음악을 좋아했어요. 과학공부를 하다가 만났지만, 음악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음악을 나눠 들었죠. 재평이와 이 음악이 왜 좋은지 분석하길 즐겼던 것 같아요. 음악을 공부하고 분석하다 보니, 결국 같이 만들어보자는 결론이 나왔죠.(웃음)”

음악을 과학적으로 표현하면 ‘고유의 진동수를 가진 12계의 음계를 조화롭게 구성하는 작업’이다. 원래 12음계의 시초가 수학자 피타고라스가 창안했다는 사실도 유명하다. 이렇듯 음악 안에도 단순한 수학적, 과학적 구조가 숨어있다. 이들은 이 기초 위에 조금 더 ‘듣기 좋은’이라는 주관적 감상을 위한 여정을 떠난다. 이들에게 음악과 과학은 다르지 않다.

신재평

“실제 전자음악의 경우나 장르의 혁신을 동반하는 경우는 공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해야지만 장르를 잘할 수 있어요. 음악과 과학을 굳이 반대되는 개념이라 보지 않고, 이를 융합하는 능력도 필요한 거죠.

이장원

“사람들이 알고 있는 화음도 단진동의 배수를 따져가며 3도, 4도, 5도 이런 식을 쌓는 일이죠. ‘아름답구나’하는 감성은 의외로 정성적인 계량이 가능해요. 하지만 음악은 문학이나 미술과 다르게 청각이라는 서로 다른 감각을 통해 접촉해요. 그래서 과학을 하는 저희에게는 꽤나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프로그래머가 꿈이었던 신재평은 음악에도 고스란히 자신의 전공을 살렸다. 그는 컴퓨터로 가능한 미디 작업이나 이를 배열하는 시퀀싱(Sequencing) 그리고 사운드를 갈고 닦는 믹싱이나 마스터링 등에 장점을 보인다. 전산학과 출신으로 경영공학도 전공한 이장원은 조금 더 음악이 세상과 맞닿는 접점을 연구했다.

신재평

“실제 공부하는 것들이 많이 도움이 됐어요. 하다못해 작업을 하다가 컴퓨터를 고칠 때도 공학적인 사고방식이 필요하죠. 저희의 경우에는 컴퓨터 용어를 가사나 제목에 쓰기도 하고, 물리학적이나 기상학적인 이야기를 주제로 노래를 구성하기도 합니다.”

흔히 모든 능력을 갖춘 사람을 ‘육각형 인재’라고 하는데 페퍼톤스의 멤버들은 그에 가깝다. 하지만 정작 신재평과 이장원은 자신들이 ‘육각형 인재’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많다.

이장원

“육각형 인재. 과분한 말씀이네요. 예전에 ‘통섭(統攝)’이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모두를 도맡아 다스린다’는 뜻이죠. 당시에는 전문가가 그 영역이 깊어져서 깊이 있는 지식이 있을수록 대중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아이러니가 있었어요. 그래서 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에 연결고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중요했어요. 음악에서 ‘육각형 인재’가 그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저희가 꼭 되고 싶은 사람입니다.”

순간 재미있는 질문이 떠올랐다. ‘융합형 아티스트’로 각광받고 있는 페퍼톤스가 실제로 ‘융합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서정적인 신재평과 실용적인 이장원 사이의 대답이 갈린다.

신재평

“요즘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의 충돌이 많은 것 같아요. 저는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서로의 생각을 섞을 수 있는 기기가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요. 서로의 생각도 들여다보고, 생각을 섞어서 대립을 줄이고 이해를 늘릴 수 있지 않을까요?”

이장원

“차에 관심이 많은데요. 항상 집에서 일을 하다 보니 음악여행을 할 때 작업하기 편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집에 있는 음악기기를 전기차의 형태로 가지고 나올 수 있게, 차와 음악장비를 ‘융합’한 장비가 있다면 좋겠습니다.(웃음)”

20년의 가쁜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쉬는 그들이지만, 하루가 끝나고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듯 그들에게는 새로운 아침이, 새로운 날들이 시작됐다.
한편, 「월간 내일」의 독자들에게도 인사를 전했다.

신재평

“올해는 영화도 개봉하고, 새로운 경험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는 기분으로 부딪쳐서 배우고 싶어요. 성장하는 페퍼톤스, 성숙한 음악인으로서 저희의 21주년을 열고 싶습니다.”

이장원

「월간 내일」 독자 여러분. 늘 노력하시겠지만, 자신의 분야에만 치중한 것보다 흥미로운 것이 있다면 상식선까지는 지켜보시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반드시 있지 않을까요?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관심을 가지시는 한 해 되시길 기원합니다.”

과학도다운 창의적인 발상부터
아티스트 특유의 서정적인 모습까지
다양한 면모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