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보하 스폿

하늘길에서 누리는 벚꽃놀이

마포구 합정

우리가 계절을 향유하는 방법은 그 계절에만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을 해 보는 것이다.
유독 짧은 봄, 짧은 기간 동안 가장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벚꽃을 눈에 담아두는 것은 어떨까.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서울 합정 하늘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흩날리는 벚꽃잎을 잡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

글. 김민영 사진. 정우철

벚꽃이 아름다운 하늘길

만물이 움튼다는 계절 봄에 꼭 해야 할 일을 정한다면, 단연코 벚꽃 보기가 아닐까. 길게는 2주, 짧게는 1주 동안 화려하게 피고, 져버리기 때문인지 많은 사람이 봄이 되면 ‘벚꽃구경’을 버킷리스트에 넣는다.

합정 하늘길은 도심 속에서 벚꽃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는 골목길 중 하나다. 서울 마포구 합정역 7번 출구에서 마포새빛문화숲까지 이어지는 거리인데, 카페, 독립서점, 맛집, 소품 숍 등 볼거리가 많다. 하늘길이라는 이름은, 골목길에 칠해진 ‘하늘색’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하늘길에 접어들면 하늘색 길이 마치 이정표처럼 나 있는데, 워낙 눈에 잘 띄는 덕분에 헤매지 않고 거리를 거닐 수 있게 해준다. 골목 전봇대 곳곳에 붙어 있는 하늘길의 영어 명칭을 뜻하는 ‘스카이로드’ 푯말도 마찬가지다.

하늘길 따라 벚꽃나무 따라

하늘길을 걷다 보면 의외로 ‘한가하다’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것은 하늘길의 매력 포인트 중의 하나다. 홍대입구역부터 상수역까지 이어지는 ‘레드로드’가 번화한 느낌이라면, 하늘길은 이와 반대되는 한가하면서도 조용한 감성을 선사해 상반되는 매력으로 사랑받고 있다. 하늘길 골목골목을 지나 도로변으로 나오면, 봄날에만 누릴 수 있는 하늘길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도로 양옆에 벚나무가 길게 이어지는데 이 벚나무는 봄날의 하늘길을 더욱 낭만적이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이 카페와 여러 상점, 숍들과 어우러져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포새빛문화숲 넘어 홍대 레드로드까지 이어지는 벚꽃길은 마포구의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한 노력 중 하나다. ‘길이 살아야 도시가 살고, 경제가 산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마포구 곳곳의 골목길에 테마를 부여했고, 아름다운 경관을 위해 계절별로 어울리는 꽃을 심어 거리를 단장했다. 하늘길에 벚나무를 심은 것도 이런 이유였다. 지금은 벚꽃 개화 시기에 맞춰 ‘벚꽃길 스탬프 투어’ 등 다양한 봄맞이 행사를 열며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봄날의 추억을 선물하는 중이다.

걷고, 보고, 느끼는 시간

봄날의 하늘길은 걷고, 멈춤의 연속이다. 여유롭게 걷다가, 벚꽃 아래서 잠시 멈춰 마음껏 사진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어느 한 곳을 목적지로 두지 않고 그저 발길 닿는 대로 향하다 보면, 이 동네가 간직한 또 다른 이야기를 알게 된다.

절두산순교성지도 그중 하나다. 하늘길 끝자락에 위치한 이곳은, 원래는 누에의 머리 모양을 닮아 ‘잠두봉’이라 불렸다. 하지만 병인박해 때 순교자들이 처형된 후 절두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국 천주교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하늘길을 찾았다면 한 번쯤 방문해 보는 것도 좋다. 한강변에 자리하고 있어 탁 트인 한강의 풍경을 눈에 담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절두산순교성지를 지나 한강길을 따라 조금 걷다 보면, 또 다른 벚꽃길이 펼쳐진다. 합정에서 망리단길로 이어지는 희우정로 벚꽃길은 마포구의 숨은 벚꽃 명소다. 벚꽃 터널이 도로를 가득 메우는데, 하늘길 벚꽃과는 또 다른 멋이 있다. 최근에는 SNS에서 벚꽃 명소로 소문이 나면서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추세다. 이렇게 합정은 봄을 닮은 동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홀한 벚꽃과 어우러진 동네의 풍경이 봄날을 더욱 운치 있게 해준다. 올해 유독 짧다는 봄을 만끽하고 싶다면, 더 늦기 전에 동네 가까운 곳으로 가보자. 봄의 끝자락을 잡고 있는 꽃잎들이 반겨줄 테니.

아보하 스폿